(찬 31장)

세상에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악한 자들이 있는가 하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선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지혜를 배우고 사람들을 살리는 길로 인도하는 생명의 사람들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살면서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네 가지가 있어요.
엎질러진 물, 시위를 떠난 화살, 흘러가 버린 시간, 내뱉은 말입니다.
특히 이 가운데 말은 그 대상이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고 신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말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기 때문인데요.

오늘 본문은 한 무명의 여인의 말을 통해서 성읍 백성이 생명을 보존하게 되는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서론이 되는 전반부를 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베냐민 출신의 불량배 세바라고 하는 사람이 다윗을 대적해서 일어났습니다.
유다 지파를 제외한 온 이스라엘이 세바를 따르게 됩니다. 다윗이 아마사에게 3일 이내에 유다 사람을 소집하게 했는데, 그 일이 지체되자 아비새에게 세바를 쫓게 합니다. 요합은 개인적 감정으로 아마사를 칼로 찔러 죽인 후, 동생 아비새와 함께 세바를 쫓아간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내용은 세바는 이스라엘 무리를 모아 벧마아가 아벨로 갑니다.
요압과 함께한 백성이 성벽을 헐려고 하자, 아벨의 지혜로운 여인이 요압을 불러 성을 멸하려는 이유를 묻습니다.
요압이 세바만 내주면 성을 헐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여인은 아벨 백성과 의논해서 세바의 머리를 배워서 요압에게 던진다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13~14절)에서 요압이 사적 욕망에 사로잡혀 아마사를 죽이는 사이, 세바가 이스라엘 지파들 지역을 다니며 선동을 해서 무리를 모아 아벨성에 이르게 됐습니다.
세바가 ‘다윗과 나눌 분깃도, 그에게서 받을 유산도 없다’는 연설로 다윗과 백성들을 이간질하자, 적지 않은 무리가 그를 따랐습니다. 세바의 관심사는 나라의 평화와 백성이 하나됨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요 그저 자신의 분깃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세바를 따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공동체 교회 안에서 우리의 말은 우리의 얻을 이익과 상관없이 정직하고 일관되어야 합니다.

이어서 (15~16절)까지 내용은 요압은 아벨 성으로 가서 성벽을 부수기 위해서 성벽 밖에 성보다 더 큰 토성을 쌓았습니다.
토성을 통해서 성벽을 공격하고 성읍 안으로 진입하려는 작전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곧 진압 작전이 시작되려는 순간에 아벨 벤마가에서 협상 전문 여성이 등장하게 됩니다.
여인은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라고 외치며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사무엘서의 저자는 그 여인을 그저 지혜로운 여인이라고 소개했는데요 당시 모든 상황이 지혜롭지 않은 어리석은 것임을 고발하는 듯한 어감을 풍기고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요압의 군대가 쳐들어올 수 있는 다급한 상황에서 여인이 나섰다는 것은 놀라운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용감하게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어리석음을 분별할 지혜와 어떤 희생도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여러분과 저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17절)에 보면, 요압은 여인의 말을 듣기 위해서 다가갔습니다. 그는 감정적으로 매우 흥분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인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서 다가갔습니다. 그때 이 여인은 자신을 ‘여종’으로 낮추면서 대화를 시작했는데요.
이렇게 지혜로운 말에는 바른 태도가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경청하는 자세, 오해없이 전하기 위한 겸손한 자세가 우리의 습관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혜로운 여인은 아벨 성의 가치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아벨성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업을 삼키는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요압은 자신은 결단코 그럴 생각이 없다고 거듭 반복하며 부정하는데요.
여인은 요압의 행위가 하나의 성을 공격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억을 삼키는 것이라고 신앙적 차원에서 설득한 것입니다.

결국 요압은 아벨 성을 공격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타협안을 제시했는데요 그래서 새로운 방향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요압 장군은 역모자 세 발을 내주면 성벽에서 떠나가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여인은 백성을 설득해서 세바의 머리를 잘라 요압에게 던져 주었고, 요압은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여성은 협상의 기술 또는 화술를 뜻하는 ‘지혜 있는 여인’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성경의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했지만, 이 여성은 진압군의 지휘관 요압에게 매우 논리적으로 평화적인 해결안을 제시하고 장군을 설득했습니다. 그녀는 세바의 반란군 때문에 아벨벧마가를 멸망시킨다면, 결국 다윗 왕정의 통일성에도 균열이 가서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요압 장군을 설득했습니다.
요압은 이 여성의 설득에 동의하고 세바만 넘겨달라고 요구했죠. 이 여성은 다시 아벨벧마아가 백성을 설득하는 과제를 떠안고 돌아갔습니다. 아마도 그녀가 이렇게 중재 협상을 한 것이 처음은 아닌 듯합니다. 그녀는 그 일을 매우 잘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결국 그녀의 설득이 통했고, 세바의 수급을 요압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동족 간의 전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반란 진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도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 여성은, 이야기의 전면에서 나서서 온갖 욕심과 속임수와 악행을 서슴지 않는 남성 등장 인물들보다 독자들인 우리에게 훨씬 더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아벨성 백성 앞에 오직 지혜를 가지고 나아갔다”라고 돼 있는데요 그 지혜는 요압의 군대보다 강한 하나님의 지혜였기 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참된 지혜는 사람의 마음을 깨우는 진리의 외침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말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 살아야 될 주님의 제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박영선 저자의 ‘인격의 제자 훈련’이라는 책의 내용의 일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생각과 말입니다. 생각은 말을 결정하고 행동을 결정합니다. 말은 다른 모든 것보다 가장 먼저 하는 행동입니다. 몸으로 행동하기 전에 먼저 나타나는 첫 번째 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든지 우리의 생각과 말에서 분명히 잡고 있어야 합니다.
예전에 고 박윤선 목사님은 자신을 찾아온 목사님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자리에 없는 다른 목사님을 비난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기침을 하셨답니다. ‘하지 말라’ 이거죠 그러면 목사님들이 ‘싫어하시는구나’하고 말을 잊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다시 험담ㅇ을 하면 박윤석 목사님은 돌아앉으신답니다. 대단하죠? 그렇다고 여러분은 박 목사님의 이야기를 본받아 기침을 하거나 돌아앉고 그러지 마세요. 험담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 하면 안 돼라고 하지 마십시오.
“점심 먹었어?” 이런 식으로 지혜롭게 화제를 돌려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혜롭게 말을 할 수 있다면 사람을 살릴 수 있고 죽어가는 생명도 하나님 앞에 돌이켜 돌아오게 할 수 있습니다.
지혜서인 잠언서 보면 지에 대한 말씀이 많은데요 특히 (3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우리에게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낮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내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또 (잠 4장 7절)에 보면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내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라”


https://www.youtube.com/watch?v=zI9eNeHpIMY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스라엘 지파를 부추겨 반란을 일으켰던 세바는 허망한 최후를 맞았고 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모두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반면 지혜로운 말로 하나님 기업의 소중함을 일깨운 지혜로운 여인은 아벨성 전체에 생명을 구했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세상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 또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시고 지혜로운 말을 해서 생명을 살리는 성도로 우리의 삶의 자리를 밝히시는 복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 안에서 생명 살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세바가 허망하게 사람들을 속이다가 허망하게 죽어버리고 끝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성읍을 살린 지혜로운 여인의 말을 보았습니다. 주님, 우리도 이 여인처럼 지혜롭게 하시고 명철의 지배를 받는 성도로 살게 해주옵소서. 특별히 우리의 말과 생각 속에 지혜를 넣어주시고, 분별력을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복된 말하게 하시고, 생명을 살리는 말 하게 하시고, 남을 비난하거나 흠을 잡는 말을 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또 하나님 앞에서 입술로 사람을 살리고 살리기 위하여 격려하고 사랑의 말을 하고, 힘을 줄 수 있는 참된 주님의 사람으로 오늘 하루도 살아날 수 있도록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또 우리의 영원한 지혜자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명철를 주실 것을 믿으며, 그 입술의 말이 지혜롭게 되기를 바라며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391)

 

 인간관계에서는 친밀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다가도 작은 일로 마음이 상해서 관계를 끊어버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좀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요나단과 다윗의 견고한 우정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서로의 처지와 상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다윗과 요나단이 깊은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죠. 사람들은 주로 자기가 가진 조건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찾고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학식이나 재력 때로는 외모나 성격을 따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건을 보고 맺은 관계는 상대방의 상황이나 조건이 달라지면 소원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다윗의 처지가 곤궁해졌음에도 요나단의 신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것을 보았고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는 위용에 매력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우정은 다윗이 형통할 때나 힘없이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때나 동일하게 유지되었습니다. 오히려 다윗이 자기 아버지 사울의 위협을 피할 수 있도록 자기가 가진 지위를 사용해 도왔습니다. 이처럼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이 견고한 이유는 조건과 형편을 초월한 순수한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과연 상대방이 가진 조건과 상관없이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비천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다해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우리는 우리 지체와 이웃들을 또한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순수한 사랑 안에서 맺어진 우정관계야말로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친밀함을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결코 인간적인 호감으로만 맺어진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를 가진 신앙인들이었습니다. 특히 요나단은 다윗이 하는 일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면서 하나님이 사울의 가문이 아니라 다윗과 그 가문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기꺼이 순종하면서 다윗에게 하나님의 인자를 자신의 집 안에 베풀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이익이나 명예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야말로 견고한 관계의 필수 요소입니다.

 조덕삼과 이자익은 한 집안 주인과 머슴이었습니다. 그들은 신분상으로는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믿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인이 되자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로 변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모두 장로 후보가 되었고 머슴 이자익에게 먼저 장로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 조덕삼은 자기의 이자익과 감정에 흔들리지 않았고 머슴이 자신보다 먼저 장로로 선출된 상황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이자익을 교회 지도자로 섬기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덕삼은 이후에 이자익을 신학교에 유학 보냈으며 목회자가 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조덕삼의 섬김으로 이자익은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생각한다면 우리도 이처럼 아름답고 견고한 관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존 오토버그>, ‘선택 훈련이라는 책의 내용의 일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얼마 전에 아내와 나는 30년간 알고 지낸 두 부부를 만났다 우리는 각자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데 오랜만에 모여 며칠간 거의 붙어있다시피 했다. 그 며칠 동안 나는 관계의 열린 문을 확인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여러 번 추진했다.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할 시간이 오자 그들이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우리도 친밀함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가끔 당신은 친밀함을 강요합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러가게 놔두지 않고 자꾸만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대답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관한 말도 너무 많이 합니다. 당신이 대화의 중심에 서려고 할 때가 너무 많아요.”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모두 내가 30년 넘게 알고 지낸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 한 부부는 청소년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 다섯 친구를 새로 사귀해야겠군.’
나중에 이 일에 관해 아내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약간 옥신각신 했고 어느 순간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나도 당신 친구들이 좋아요. 하지만 가끔 당신은 자신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내가 당신의 세상으로 들어와 당신의 일에 관심을 갖고 당신의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바라면서 당신은 내 세상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죠.“
그 순간 내가 말로는 진실과 정직 진정성을 중시한다고 말하면서 나에 관한 진실은 듣기 싫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용기 있게 진실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다면 나에 관한 진실을 알 수 없다.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나의 성장을 위해 사랑으로 진실을 이야기해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열린 문의 모험으로 부르신다. 그 문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단순히 새로운 땅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존재가 된다.

그렇습니다. 나에게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그 사람이 친구가 있다는 뜻이요, 진정으로 복을 받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우정은 하나님의 통치를 서로 인정할 때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참된 우정은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할 때 성장하고 유지되는 것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처럼 말입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인간적인 조건을 따지며 만나는 관계는 상황에 따라 깨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인간적인 조건에 좌우되지 않고 서로의 관계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인정할 때 우리의 관계는 감정과 조건을 넘어 변함없는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진정한 우정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주님 안에서의 진정한 우정을 맺을 수 있는 영적 친구와 함께하십시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인정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통치를 인정하고 맺어진 관계는 오래된 나무처럼 아름답게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참된 우정의 관계가 여러분과 저와의 관계로 우리 모두의 관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

사랑하는 주님 이 세상은 참으로 외롭고 때로는 고독하고 힘든 길입니다. 주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좋은 우정의 관계도 유지할 수 있도록 좋은 친구를 허락하여 주시고 내가 또한 좋은 친구가 되게 하시며 참된 우정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통치 아래 거하게 해 주십시오 자와 성도들과의 관계와 우리 서로와의 관계가 주님 안에서 영원히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오늘 또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로 저희를 주장하여 주시고 우리의 관계 속에서 악한 사탄이 틈타지 못하도록 막아주시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참된 신앙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원하오며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기댈만한 예수님



(
86)

고난과 환란을 당할 때 또 낙심해 있을 때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다면 매우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겠죠.
친구에 대한 명언을 몇 가지 조사해 봤는데요. 명심보감에 열매가 없는 과일 나무는 심을 필요가 없고 의리가 없는 친구는 사귈 필요가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진실된 우정이란 느리게 자라는 나무와 같다.”라고 말했고,
소크라테스는 모든 언행을 칭찬하는 자보다 결점을 잘 말해주는 친구를 가까이 하라라고 조언했고, 조지 오버트 목사님은 오래된 친구가 가장 좋은 거울이다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요즘에 개인주의가 심화되는 이 때에 우리는 요나단과 다윗의 그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를 통해서 많은 교훈과 도전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요나단이 다윗에게 보여준 친밀한 우정을 우리가 다양한 관계 안에서 이루어 가기를 기대하실 것입니다.
진실한 친구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들이 필요할까요?

친밀한 인간관계의 필수 요소는 무엇보다 정직하게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쫓기면서 극한의 두려움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는 요나단을 찾아가 자신의 불안하고 힘겨운 마음을 토로했는데요.

그리고 사울왕이 자신을 죽이려는 의도와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불만도 털어 놓았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이 자신의 마음을 잘 알게 되면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와줄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형편을 들은 후에 그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를 도울 방법도 제안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자신의 약점과 어려운 형편을 공감하지 못하리라고 짐작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소문을 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친밀하고 따뜻한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부로 평가하거나 그것을 함부로 발산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 스스로를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1113)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진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잠언 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22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여기 이 있어야 된다고 했는데 히브리어로 (hen)‘입니다. ’매력, 아름다움, 매력적인 인격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여러분과 저에게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는 은혜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14) “너희가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여러분과 저에게 가장 좋은 친구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많은 사람은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 상처받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려 합니다.
요즘에는 이런 분위기가 정말 대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진실하게 교제하기 위해서 마음을 나누고 깨진 마음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서로 영적인 친구가 될 때에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우리에게로 와서 넉넉한 위로와 치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다윗과 요나단과 같은 영적 친구의 관계가 아름답게 조성되고 이어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9W3XwepXrM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다윗과 요나단이 좋은 친구 관계로서 함께해주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영적 친구의 관계가 되게 하시고 그래서 진정한 주님의 교회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이 점점 식어지는 이 때에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예수님께서 나의 친구가 되어 주신 것처럼 내가 누군가의 좋은 친구가 되게 하시고 좋은 친구 되신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복음의 전도자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또 우리의 영원한 친구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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