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찬 150장)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분은 오전 9시경부터 3시간에 걸쳐서 참기 힘든 조롱과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이 시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 가장 무지하며 가장 절망적인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간은 역설적이기에도 가장 고귀하고 치밀하게 계획되었으며 인류에게 가장 큰 소망이 된 시간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고난 속에서 십자가를 바라봐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거에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다는 사실을 부인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시기 전에 이미 영혼은 떠났다고 주장하면서 예수님이 당하신 권한을 희석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모든 고난의 과정을 온몸으로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은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모든 고통을 오롯이 감당하신 것이지요.

왜 아무런 죄도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심과 더불어 우리가 인생에서 당하는 모든 고난을 친히 경험하신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생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아시고 우리에게 찾아오는 아픔을 깊이 이해하시며 공감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시련과 역경이 찾아올 때마다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공감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위로를 받습니다. 하지만 자기 손톱 밑 가시가 남의 큰 병보다 아프다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의 아픔을 온전히 공감해 주는 사람을 찾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2장 18절) 말씀에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십자가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시험을 받아 고난당하셨기 때문에 시험받는 자들을 도우실 수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지금 고통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주님께 나아가 그분께 그 고통을 낱낱이 아뢰 보시기 바랍니다. 시련이 주는 아픔과 두려움 그리고 마음의 고통을 주님이 다 헤아려 주시고 참된 위로로 우리를 지니 만나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봐야 할까요?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결코 고난이 실패가 아님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상황과 문제만 바라볼 때는 시련을 왜 주셨는가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때로는 낙심하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고난 없이 평탄하고 안락한 삶이야말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이런 안락한 삶을 소망하며 기대하며 살아가지요.
하지만 십자가는 고통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요. 섭리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아들 예수님께 허용하셨고 고통이 아니면 결코 주어지지 않는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은혜 또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옛 습관과 이기적 자아로 인해서 사람들과 부딪히고 갈등하던 우리를 하나님은 여러 모양과 고난과 실현을 통해서 다듬어 오셨잖아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좀 더 겸손한 사람이 되었고 고난 속에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는 넓은 폭의 마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때문에 낙심할 때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의 수단이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아름다운 성품을 갖도록 우리를 빚어 나아가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다고 고백하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죽어 보이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어 보이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의 영혼은 새롭게 창조되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고백했는데요.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예수님의 상처를 자기 몸에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권한이 나의 권한이 되었고 십자가의 은혜가 나의 은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십자가의 흔적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고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나의 고통을 이해하시는 그리고 공감해 주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의 섭리를 통해서 구원을 이루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심까지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십자가는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형틀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우리의 고난을 깊이 이해하시고 공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길을 걸어갈 때 문제가 있을 때 상황이 너무 힘들 때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세요.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세요.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세요.
그러면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키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까지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괴로울 때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모든 고난과 문제를 극복하여 이기는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TkS_MgZ7NA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 예수님 예수님은 나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통해서 위로받기 원합니다.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시고 아픔까지도 충분히 공감해 주시는 주님의 위로를 받기 원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셔서 부활의 승리를 보여주신 주님 우리도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잘 지고 결국 구원의 승리에 이룰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시고 오늘 또 십자가를 바라볼 때 모든 고통과 문제들이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게 하시고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십자가만을 증거하고 내 몸에 십자가의 흔적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오늘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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