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Atkinson Grimshaw, 'Thro the Wood '.


 살아남기는 영어로 서바이벌입니다
. 한 때 학생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시리즈’ 책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곧 살아남아야 하는 치열한 경쟁구도입니다. 특히 세상의 순리대로 살면 트러블이 없지만, 성도가 성경대로 살고자 할 때, 부딪쳐야 하는 역풍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세상의 역사만큼이나 피조물이 창조주를 몰아내는 역사는 뿌리 깊고 오래됐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과학의 급속적인 발전과 지식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는 점점 더 하나님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을 줄여버렸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도 정체성을 지키며 살기가 벼랑 끝에 선 자처럼 위태롭게 되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을 지키기가 만만치 않게 되었고, 이것을 보고 어떤 신학자는 구원받을 사람은 신앙인의 50%도 안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신학자는 채 10%도 안 될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가 구원받을 사람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신비의 영역이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이대로 가다간, 악인이 점점 더 득세하는 세상에서 크리스천이 신앙을 지키며 살아남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시대라고 해서 만만했던 때는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항상 악인들이 있었고, 영적 부랑아들, 파괴자들, 원수들이 득세하고 있었고, 그들은 어서 빨리 다윗이 무너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다윗뿐 아니라, 다윗이 믿는 신앙을 포함한 영적인 파괴였습니다.

다윗은 오늘 그 악인들을 원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쓴 이유는 사람의 일을 넘어 배후에 있는 사탄을 겨냥한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은 마치 최전방의 격전지에서 포격지원을 요청하는 무전신호처럼 보입니다. 어느 지역, 어느 좌표를 찍어주며 집중포화를 날려달라는 식으로 구원요청 기도를 드립니다.

 
특히 눈에 띄는 기도는 반복되는 말에 있습니다.

원수들이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서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이 소원성취하지 못하게 하시며, 나를 삼켰다 말하지 못하게 하소서. 낭패당하게 하시며, 수치와 욕을 당하게 하소서

자신이 어떻게 다 방어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입까지 다스려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죠.

 

우리에게는 구원요청기도가 더 절실한 시대입니다.

사탄은 잠도 안자고 부지런하게 일하고, 끈질기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신앙을 파괴하려 모략(謀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서도 영적 싸움이 있고, 직장에 나가도 시험거리가 늘 발에 걸리적 거리고, 심지어 교회에서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십자가의 복음과 하나님에 대한 절대진리를 물타기해서, 교묘하게 불신자로 만드는 문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와 후손들이 신앙을 지키는 것은 훨씬 더 어렵고, 험난하게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인 우리들은 늘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시대는 성경적으로 볼 때 종말의 때요, 영적 전쟁이 치열한 때입니다. 그래서 이단들이 득세를 하고, 사람들의 타락이 점점 일반화되어 번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분별하고,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직시해야 합니다.

따라서 자녀들의 신앙을 점검하시고, 매일 말씀을 가까이 하도록 큐티생활도 꼼꼼히 지도해야 합니다.

다른 것 보다 신앙생활이 무너지면, 우리와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을 만드는 것일 뿐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해도, 결국 가치관이 다르면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결국 천국에서도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을 각오해야 합니다.

 

오늘 다윗의 마지막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다윗은 세상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남는 것을 목적으로 두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도 항상 이렇게 했던 것입니다.

 

악인이 득세하고, 불신앙이 문화가 되어 번지는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남으려면 다윗의 구원요청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 내면에서부터 역사하는 수많은 죄악된 생각들과 싸워 이기고,

밖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요소들을 이겨내려면

먼저 주님으로 채워지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악인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고 승리하는 복된 하루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오늘도 함께 하시며 도우시는 성령님으로 승전하십시오! 


https://studio.youtube.com/video/xgdwBe5tCxQ/edit


송정수 목사(백석신학대학원,연세신학대학원,행복한제자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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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은 성장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거나,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오늘은 끊임없이 성장하여 마지막에 참된 지혜를 전수하는 사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xNT5cnQqRw 

야곱은 아버지에게 장자의 축복을 받아내려 했다가 그 일로 인해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라헬을 사랑해서 아내로 맞이하려 했다가 레아까지 아내로 맞이하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고, 세겜에 정착하고 싶었으나 벧엘로 떠나야 했고, 요셉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으나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야곱은 이제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 서게 되었고,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해 줌으써, 하나님께 받은 참된 지혜를 전수하게 됩니다.

 

(12~16)에는 야곱이 깨달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언약의 축복을 전수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오른손을 장자 므낫세에 머리에 올리도록 자리를 배치했지만, 야곱은 팔을 교차하면서 왼손을 므낫세의 머리위에, 오른 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위에 얹고 축복했습니다.

지금 야곱의 두 손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머리위에 있지만, 그 축복은 요셉을 향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의 축복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세상에서 번성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번성의 축복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변함없이 주셨던 축복이며, 또한 자기가 집을 떠나야 했을 때 아버지 이삭이 자신에게 빌어준 복이기도 했습니다.

(17~22)의 내용은 야곱이 지혜롭게 되어 하나님의 섭리를 꿰뚫어 보는 내용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눈이 어두워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잘못 알고 손을 올리려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른손을 장남인 므낫세에게 올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른손에 에브라임을, 왼손에 므낫세를 안수했습니다.

야곱은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질만한데도 그의 지혜는 번득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을 장자로 선택하셨고, 라반보다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야곱을 통해 므낫세보다는 에브라임을 먼저 선택하여 크게 번성할 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므낫세가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야곱은 믿음의 사람들이 타인을 축복할 때, “에브라임같고 므낫세와 같이 할 것이라고 했으며, 두 손자의 후손 역시 크게 번성하게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또한 야곱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후손들을 떠나지 않으셔서, 때가 차면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세겜 땅을 요셉에게 유산으로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일은 야곱이 죽은 후 400년이 지나, 실현되었고요, 이후 세겜 땅은 에브라임 지파가 차지하게 됩니다.

 

오늘 야곱의 모습을 좀 보세요. 어릴적이나 청년 시절에 지혜가 없어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면서 기회를 낭비했던 모습은 없습니다. 그동안 야곱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고, 그 과정을 통해 징계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성장했고, 오늘은 하나님의 섭리를 꿰뚫는 영적 혜안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의식하며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영적 깨달음과 영적 혜안이 열릴 수 있습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매일매일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그분께 지혜를 얻고, 영적 혜안이 열려서, 참된 지혜를 전수하는 복된 어른들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오늘까지 계속적으로 성장해 온 야곱의 발자취를 따라와 보았습니다.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점점 성장해서 마침내 요셉과 두 아들을 축복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우리도 반복되는 일상이라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하루를 주셨기에, 늘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도 점점 성장하여 말년에는 하나님께 받은 참된 지혜를 전수하는 어른이 되게 해 주십시오.

 

 

 

 

[생명의삶 / 성장큐티] 2022년 11월 16일 수요일 QT 

 

본문 : 창세기 47장 23~31절 

제목 : 성공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

설교 : 송정수 목사(백석신학대학원,연세신학대학원,행복한제자교회)

 

(찬 327장)

 지금까지 살면서 성공한 사람들이 무너지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았고, 듣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며 목표에 도달하지만, 정작 그 목표에 도달했을 때는 원래의 처음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현실적 상황이라는 미명아래 타협해 버리고 맙니다. 우리도 어쩌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맡을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 말씀이 있지요,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길 때 기본적으로 원하는 것은 성실함이죠. 오늘 요셉은 우리에게 성공하는 것보다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17세 청소년이었을 때 애굽에 종으로 팔려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이나 원망을 하지 않고 신실하게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의 뜻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높이 드셔서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고, 요셉은 세상의 정치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깨끗하고 정직하게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했습니다.

 

  요셉은 과거에 팔렸던 사람인데, 오늘에서 요셉은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형들에게 팔렸는데, 이제는 애굽 백성의 몸과 토지를 산 사람이 되었던 것이죠. 하지만 요셉은 백성에게 가혹한 요구를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삶을 보장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요셉은 비록 양식을 주고 그들의 땅을 샀지만,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고, 소출의 5분의 1을 세금으로 바치기만 하면 그 땅에서 그대로 살 수 있는 정책을 폈습니다.

 

  BC 18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밝혀진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에는 농부들이 정부에 3분의 1이나, 심하면 2분의 1을 세금으로 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요셉이 백성에게 부과한 세율은 무리가 없는 수준입니다. 백성들은 7년 동안 이어진 흉년으로 인해 요셉에게 땅을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크게 부담되지 않는 수준의 세금만 부담하면 원래 자신의 소유하던 땅에서 떠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감사를 표하며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까지 몰려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요셉의 공정한 리더십으로 인해 당시 애굽을 가장 강력한 중앙집권 체계를 갖추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한 사람의 헌신과 희생으로 인해, 야곱의 70명의 가족뿐 아니라, 애굽에 몰려든 백성들까지 생명을 살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이 현대문명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을까요?

 

 요셉은 우리에게 성공하는 것보다 성공속에서도 그 성공에 도취되지 않고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이 어떤 삶인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무엇일까요? 바로 욕망으로부터 자유입니다.

 (잠 28장 25절)에서는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킨다”고 말씀합니다. (민 11장)에서 ’기브롯 핫다아와는 욕심을 낸 백성이 죽은 장소‘를 가르키고요,

 (시 10편 3절)에서는 “악인은 그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으며,

 (약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세상의 모든 죄의 시작은 개인의 이기적 욕망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개인의 욕망이 타인의 욕망과 부딪치면 경쟁도 하지만, 하나로 뭉치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핵폭탄처럼 번져 나가는 특성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욕망이나 욕심이 적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물론 환경적으로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은 인간의 원초적 갈망이기 때문에 누구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성도는 그 욕망을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의 비밀스러운 사역, 즉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갈 5장)에 보면 거룩하신 성령님의 사역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온유와 절제라고 했습니다. 이것 또한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모두 정과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구약시대 성령님은 요셉를 도왔고, 그가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런 삶을 살도록 감동과 감화를 주었습니다. 신약시대 성령님은 직접 영접한 자의 몸에 들어오셔서 심령에 따뜻한 변화를 일으키게 하십니다. 또한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바라보는 삶도 살게 하시는 분입니다. (엡 4장 22절)에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하셨는데, 오늘 여러분과 저를 썩어져 가는 구습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성공시킬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안에 들어오시면 육체적이고, 환경적이고, 물질적인 욕망을 뛰어넘어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요셉과 함께 하셨던 성령님의 역사가 함께 임하시길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 거룩하신 성령님, 우리 안에 욕망과 욕심이 있는데, 당신께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요셉의 명철과 충성스러움은 성령님의 도우심의 결과였을 줄 압니다. 오늘도 우리가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이 되는 진정한 성공을 이루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영적으로 부유한 자 되게 하시고, 우리가 받은 작고 큰 성공을 지키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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