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 향유를 부은 여인

 

(찬 214장)

예수님은 절대 원하지 않는 죽음을 맞이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의지로 죽음의 길로 나아가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죽음이 가까웠을 때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신앙적 행동을 통해서 성도들이 예수님께 보여야 하는 가장 합당한 태도와 삶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아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식사 자리를 마련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이틀 후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당신이 죽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하지도 그것을 준비하지도 못했습니다.
자 그런데 한 여인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장 귀한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제자들은 낭비라고 화를 냈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녀가 당신의 장례를 준비했다며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그녀는 평소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뜻을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설교를 인터넷을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많은 말씀을 듣고 아는 것만으로는 우리 신앙이 성숙하다 말할 수 없습니다.
향유를 부은 이름 없는 여인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때만, 그리고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길 때만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이 가진 선험적 지식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향유를 부은 여인은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잘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죠.

오늘 여러분과 저도 우리의 선험적 지식 경험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다면 그 말씀은 우리의 삶에 놀랍고 위대한 역사를 시작할 것입니다.


당시 향유는 당시에 매우 값비싼 품목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자기에게 있는 가장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제자들은 여인이 비싼 향유를 낭비했다고 판단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고 꾸짖었어요.
제자들의 이 지적은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며 사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어떤 사명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헌신하는 일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이 바친 헌신을 기쁘게 받으셨으며 사람들 앞에 그녀를 높여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복음이 전해지는 모든 곳에서 이 여인의 행실이 전해지리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오늘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께 예배하고 있습니까? 어떤 자세로 봉사하고 주님께 예물을 드리고 있습니까? 이 한 여인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예배하고 예물을 드릴 때 예수님은 진정으로 기뻐하시고 그 모든 것을 받으실 것입니다.
신명기에서 하나님은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도 반복해서 그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래서 행하는 모든 봉사와 헌신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 받으시는 봉사와 헌신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하십시오. 사랑하는 마음으로 큐티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찬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향유를 보인 여인처럼 주님 앞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셨기 때문에 그분을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드린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전혀 낭비라 할 수 없습니다. 향유를 부은 여인의 놀라운 헌신을 기억하시고 높여 주셨듯이 우리 구주 예수님은 우리가 드리는 작은 사랑과 헌신도 언제나 기쁘게 받으시며 영원히 기억해 주시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여인처럼 주님 앞에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 구주 되신 예수님을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향유를 부은 여인은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신이 가장 값진 것을 들림으로 주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입술로만 고백할 것이 아니라 말씀에 구체적으로 순종하며 우리의 헌신과 예물과 우리의 정성을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님은 정말로 기뻐하시고 여러분과 저를 더욱더 복되고 전기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이 여인의 주님을 향한 사랑이 오늘 여러분과 저희에게 충만하게 나타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Ik3rVVE6D0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주님의 죽음을 향유를 통해서 표현했던 여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잘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귀한 것을 깨서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주님, 우리가 하는 모든 신앙적 행동과 삶에서 하는 모든 일이 주님을 향한 마음에서 동기가 되어 행동하게 해주십시오. 오늘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또한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충만한 성도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부부

 

(고후 81-15)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그분을 따르길 원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분을 따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란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헌금에 대한 부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4)에 보면 먼저 마게도냐 성도들의 헌신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매우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과, 신앙적인 핍박속에서도 힘써 헌금함으로써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도왔습니다. 힘이 닿는 대로 구제했고, 심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구제했으며, 구제하는 특권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억지로가 아니라, 스스로 자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넘치는 기쁨이 있었으며, 그들의 마음은 어떤 부자보다 넉넉했다고 말합니다.

 

(5)에서 마게도냐 성도들이 자원하여 구제에 앞장 선 것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데, 자신들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지길 원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더 큰 만큼 더 넘치는 감사와 구제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길 원했습니다
. 억지라고 아니라 복음을 향한 진실한 사랑에서 나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은 이렇게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심으로 자신을 따르는 자를 영원히 부요하게 하시는 분이시니, 그분을 따르는 일에 두려움을 갖지 말고 헌신하라고 합니다.

 

(10-15)은 고린도 교회도 선한 마음을 가지고 귀한 사역에 동참할 것을 권면합니다. 이제 주님을 따르길 원하는 선한 열정이 실제적인 헌신으로도 나타나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소득 수준에 비례해서 구제할 것을 권합니다. 즉 많이 가진 자는 많이 구제하고, 적게 가진 자는 자기 가진 것에 따르라는 것입니다.


 지금 부유한 자는 자신의 부요함으로 현재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균등의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마치 적은 누룩이 가루 서 말도 전부 부풀게 하는 누룩처럼, 성도의 헌금이 이 땅의 불평등을 고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일에 귀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요는 남과 상관없이 나 혼자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이런 부요는 상대적인 피해자를 낳고, 상대적 박탈감을 더해갈 뿐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서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가진 자는 너무 많이 가져 어떻게 가치있게 쓸 줄을 모르고 낭비하고, 못 가진 자는 너무 없어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

 
이런 시대에 주님의 교회인 우리는,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우리 중 누구도 그렇게 넉넉하거나 큰 부자도 없고, 쌓아놓고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형편대로 나눔을 통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할 때, 공동체는 균등의 부요를 이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과 다른 건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마게도냐 성도들은 구제를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으로 알고, 없는 중에도 자신의 것을 나누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십시오. 재정적인 사용에 있어서도 주님의 은혜가 머무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이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성도가 믿음으로 할 수 있는 큰 특권입니다.

 

www.youtube.com/watch?v=8stJJi2ygHA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