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만찬의 예수와 제자들

 

(찬 265장)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한 만찬 자리에서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속죄사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순종의 길을 가시는데요. 그분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연약하여 말만 앞세웁니다. 오늘 세 사람을 보여주는데, 사리사욕을 위해 수년 동안 함께한 스승을 배반하고 팔아넘기는 가룟 유다, 의리와 충성을 다짐하지만, 그 다짐을 지킬 만한 능력이 없는 베드로와 제자들, 그런 자리에서도 여전히 극렬과 사랑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문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본문 (26~30절)까지 보면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 무교절 첫날 저녁에 만찬을 여셨습니다.
그 자리에는 은 30을 받고 예수님을 대제사장 무리에게 팔아넘길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예수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았지만, 여전히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왕으로 등극하시면 제자들은 그 밑에서 뭔가 한 자리 차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심한 제자들 사이에서도 예수님은 여전히 사랑과 희생을 다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나눠주셨듯 곧 자신의 살을 생명으로 주실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곧 포도주 대신에 십자가 위에서 보혈을 흘리실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 잔을 비운다면 더 예수님과 함께 잔을 나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만찬이 영원히 끝나는 것은 아니었어요.
지상에서는 마지막 잔이 될지 몰라도 장차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그 날에 새 포도주로 성도들과 함께 마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31 ~ 33절)까지 말씀을 보면 하나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함께 마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에 제자들은 기뻐하며 함께 찬양까지 부르며 신이 났습니다. 그 후 장소를 강람산으로 옮겼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금 전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예수님은 스가랴의 선지자의 말씀까지 인용하며 진지하게 말씀하셨어요.

 제자들은 꽤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자신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신뢰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자신들을 믿어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서운함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자 성질 급한 베드로가 가장 먼저 반응하는데요. “나는 결코 줄을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의 이 맹세는 그의 진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자신의 다짐만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이끌어주시는 주님을 의지해야 하고 성령을 의지해야 우리 신앙도 지속해서 이어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34~35절)까지 보십니다.
베드로는 호기롭게 자신의 충성심을 예수님께 내세웠는데 예수님은 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어요. 먼 훗날도 아니고 한 달 후도 아니고 바로 ‘이 밤이 다 지나기 전에 베드로가 나를 부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부인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며 다시 한번 충성을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들의 결심과 다짐이 진심이었다고 해도 그들은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합니다. 그들은 의리를 다짐하고 내세웠지만, 그 의리는 금방 무너지고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의리를 내세우며 호기롭게 사탄의 유혹과 시험에 맞서 싸운다고 하더라도 그 무시무시한 싸움을 혼자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로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주님을 배신할 것을 알고 계셨던 것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또한,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성도의 진심 어린 마음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연약함으로 인해서 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있기보다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 마음을 지키려면 말씀과 성령을 힘입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성령님이 당신을 붙들어 인도하도록 그 성령님을 의지하고 맡기십시오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나를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가 있습니다.
그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죄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또 그 언약의 피 안에서 보혈의 능력 가운데서 살아가는 여러분과 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zBDvYObj8I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나는 연약합니다. 나의 의지와 신앙과 절개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연약한 사람인 것을 고백합니다.
때로 넘어지고 쓰러지고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다가도 의심하고 변개하는 저희들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언약 말씀을 기억하고 성령님에 인도하심을 구하오니 오늘도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 또 신앙생활에 실패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제자로 당당히 우리 자리에 서서 믿음을 지키며 승리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찬 300장)

 

인생은 전쟁터 같습니다. 그런데 싸우기 전에 정신적으로 기가 눌리면 제 실력을 발휘하기가 어렵습니다.
성도가 감당해야 되는 싸움은 물리적 싸움이 아니라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한 믿음이 승리를 좌우합니다. 악한 영적 세력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의 크기와 두께를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한 믿음으로 무장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크고 두려운 세상을 어떻게 이겨 나갈 것인지 묵상해 보겠습니다.


(1~7절)까지는 크고 강한 골리앗의 출현입니다.

요나단의 활약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에게 크게 패했던 블레셋은 다시 힘을 모아서 이스라엘을 침공해 왔습니다.
블레셋은 에베스담밈 언덕에 진을 쳤고 이스라엘은 그 맞은편 산에 진을 쳤습니다. 두 군대가 평지를 두고 양쪽 언덕에 진을 친 상황에서 먼저 공격하는 쪽이 불리하게 되기 때문에 싸움의 초반부에서 심리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두 진영 사이에 ‘싸움을 돋우는 자’, 즉 두 진영 사이의 평지에 내려와 이스라엘 진영을 향해 도발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 이름은 골리앗이었습니다. 키는 6규빗 한뼘, 290센티미터 정도 되는 사람이었고, 5천 세겔, 약 57kg의 갑옷을 입고 있었고 600세겔, 7kg의 창날을 가진 거대한 창을 휘두를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골리앗의 이러한 거대한 모습은 세상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후에 사무엘서를 쓴 저자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처럼 크고 강한 것을 추구하면 블레셋을 이길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즘 참 안타까운 것은 교회도 은연 중에 세상처럼 크고 강한 존재가 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크고 강함 역시 껍데기에 불과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크고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제자로 삼기보다 단지 12명의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크고 강함보다 진실하고 참된 사람들을 주님의 제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너무 크고 강한 것을 추구하거나 쫓아가지 마세요. 참되고 진실한 주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애쓰십시오 그것이 여러분과 저를 더욱 값지고 복되게 할 것입니다.

 

 

(8~11절)의 내용은 이스라엘에는 대표가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공격하는 쪽이 불리한 싸움에서는 계속 대치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골리아스는 그런 상황이 답답하다는 듯이 1대 1로 싸움을 벌려 전쟁을 끝내자며 이스라엘을 충동했습니다.
이긴 사람의 나라가 패한 자의 나라를 노예로 삼자는 것이죠.
여기에서 ‘나는 블렛의 사람’이라는 골리아세의 말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즉 자기는 블렛의 사람 중에 블레셋 사람 블레셋의 대표라는 말입니다.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사실 ‘너희는 사울의 노예들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들이라고 비웃고 있는 것이죠.

원래 노예들은 당시 물건처럼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존재이므로 지금은 사울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지만 블렛의 사람들을 주인으로 섬긴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는 그런 뜻입니다.
결국 골리앗은 사울더러 나와서 너의 노예들 즉 백성들을 우리에게 빼앗기지 말고 지켜보라고 도발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을 포함한 이스라엘 모든 사람은 골리앗의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분노하며 나서는 자가 없었고 그저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울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그가 이스라엘 왕으로서 자격을 상실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원했지요. 그들을 대신해서 싸워주고 용감하게 물리쳐줄 위대하고 멋진 왕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사울왕의 모습은 백성들의 기대를 져버리고 두려워 떠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사울은 더 이상 왕의 자격이 없음을 드러내신 후에 새롭게 세워질 왕을 소개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등장하게 되는 게 바로 다윗이죠.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골리앗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듯이 우리도 세상에 크고 강한 존재들을 볼 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아무리 크고 위협적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본질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지혜를 가진 자가 이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역대상 1626) “만국의 모든 것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시편 1444) ”사람은 헛 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대단해 보이는 모든 것들은 그 본질에 있어서 헛것이요 바람과 같은 것들입니다.

(고린도전서 3)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느니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하신다 하셨느니라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이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https://www.youtube.com/watch?v=FVGR4SkrBvQ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성도와 함께 계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두렵고 무섭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골리앗과 같은 헛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달려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종 다윗처럼 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희에게 세상은 크고 두렵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운영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우리의 삶의 과제들을 성취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매일매일 성령의 기름 부어주시는 담대함으로 무장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드립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앞에 골리앞과 같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때론 우리가 그 앞에서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떨고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을 강하게 하소서 담대하게 하소서. 어떤 문제든지 그 본질을 꿰뚫어 보게 하시고 그 본질보다 더 위대하고 강하시고 놀라우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과 손을 잡고 주님을 의지함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골리앗과 같은 문제들을
하나씩 쓰러뜨리며 극복해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업들을 다 감당해 나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고 명처를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현명한 생각들을 주셔서 하나님 안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고 이끌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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