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만한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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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고난과 환란을 당할 때 또 낙심해 있을 때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다면 매우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겠죠.
친구에 대한 명언을 몇 가지 조사해 봤는데요. 명심보감에 열매가 없는 과일 나무는 심을 필요가 없고 의리가 없는 친구는 사귈 필요가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진실된 우정이란 느리게 자라는 나무와 같다.”라고 말했고,
소크라테스는 모든 언행을 칭찬하는 자보다 결점을 잘 말해주는 친구를 가까이 하라라고 조언했고, 조지 오버트 목사님은 오래된 친구가 가장 좋은 거울이다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요즘에 개인주의가 심화되는 이 때에 우리는 요나단과 다윗의 그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를 통해서 많은 교훈과 도전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요나단이 다윗에게 보여준 친밀한 우정을 우리가 다양한 관계 안에서 이루어 가기를 기대하실 것입니다.
진실한 친구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들이 필요할까요?

친밀한 인간관계의 필수 요소는 무엇보다 정직하게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쫓기면서 극한의 두려움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는 요나단을 찾아가 자신의 불안하고 힘겨운 마음을 토로했는데요.

그리고 사울왕이 자신을 죽이려는 의도와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불만도 털어 놓았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이 자신의 마음을 잘 알게 되면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와줄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형편을 들은 후에 그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를 도울 방법도 제안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자신의 약점과 어려운 형편을 공감하지 못하리라고 짐작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소문을 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친밀하고 따뜻한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부로 평가하거나 그것을 함부로 발산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 스스로를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1113)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진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잠언 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22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여기 이 있어야 된다고 했는데 히브리어로 (hen)‘입니다. ’매력, 아름다움, 매력적인 인격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여러분과 저에게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는 은혜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14) “너희가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여러분과 저에게 가장 좋은 친구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많은 사람은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 상처받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려 합니다.
요즘에는 이런 분위기가 정말 대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진실하게 교제하기 위해서 마음을 나누고 깨진 마음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서로 영적인 친구가 될 때에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우리에게로 와서 넉넉한 위로와 치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다윗과 요나단과 같은 영적 친구의 관계가 아름답게 조성되고 이어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9W3XwepXrM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다윗과 요나단이 좋은 친구 관계로서 함께해주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영적 친구의 관계가 되게 하시고 그래서 진정한 주님의 교회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이 점점 식어지는 이 때에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예수님께서 나의 친구가 되어 주신 것처럼 내가 누군가의 좋은 친구가 되게 하시고 좋은 친구 되신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복음의 전도자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또 우리의 영원한 친구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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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449장)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데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현대전에서 승전의 비결은 무기의 성능과 확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고성능의 무기를 확보했다고 해도 군인의 사기가 저하 됐다든지, 승리를 위한 확신과 단결력이 없다면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영적 전쟁에는 무엇이 중요한 승리의 요소가 될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함께 하신다는 굳은 믿음이 모든 위기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고, 어떤 위기라도 기회가 되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요나단의 믿음을 통해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고, 삶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는 말처럼 아들은 아버지를 닮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부자간이었던 사울과 요나단은 외모가 닮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울에게서 찾을 수 없는 내적 매력이 요나단에게는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전투가 전면전으로 번져 나가기 전에 요나단은 자신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블레셋 부대로 침투하자고 제안합니다. 이에 대해 아버지 사울에게는 알리지 않았는데요, 위기 상황에서 가만히 석류나무 아래 머물러 있던 사울왕과는 사뭇 다른 모습니다.

요나단의 제안에 무기를 든 소년은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겠다고 대답합니다. 요나단은 무기를 든 소년에게 명령하지 않고 제안했고, 자발적 참여를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평상시에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 신뢰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확신을 따라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표징을 구했습니다. 곧 블레셋 부대 앞에서 자신들이 나타날 때, 그들이 올라오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저들을 넘기신 것으로 알고 싸우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적들에게 노출해야만 하나님의 표징을 알 수 있는 위험한 행동으로,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나단은 자신의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달렸으니 온전히 신뢰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나단과 무기를 든 소년이 나타나자 블레셋 군인들은 이리로 올라오라고 보여줄 것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요나단은 그들의 말이 하나님의 표징임을 알아 차렸고, 단번에 올라가서 20여명의 적군을 죽였습니다. 단지 2명이 20명의 군사들을 쓰러뜨리는 것을 본 블레셋 병사들에게 큰 두려움이 덮쳤습니다. 그런데다 땅까지 진동하는 지진이 일어나면서 블레셋 진영에 큰 혼란이 일어났고, 그것이 결국 공포로 돌변하자 서로 싸우고 죽이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까지 밀려오자 블레셋 군인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에 바빠졌습니다.

그러자 숨어있던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도 블레셋에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이곳 저곳에서 튀어나와 추격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전쟁의 승리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으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이게 오늘 말씀인데요,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기 위해 기록되었을까요?

첫째, 요나단의 용맹함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의 용맹함은 단지 자신안에 있는 용기와 기백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하길 원하신다는 뜻을 분명히 알아차렸고, 그는 하나님의 사인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오늘 필요한 것은 최적의 환경이나 쾌적한 상황이 아닙니다. 요나단에게는 군사의 수나 싸우는 무기가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길 원한다는 바램이 읽혀입니다.

(6)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환경에 매몰되어 위축되지 마세요. 역사하시는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신뢰하십시오. 환경에 지배당하는 자가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는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십시오. 오늘도 당당히 삶을 누리세요.

 

두번째, 본문에서 가르쳐 주는 말씀의 적용은 동역자의 중요성입니다.

요나단에게는 무명의 무기를 든 소년이었습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함께 참여하여 블레셋 진영으로 뛰어들어가 전쟁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동역입니다. 그들은 동역의 의미를 잘 보여 주었습니다.

목회자의 가장 귀한 동역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실력있고 능력있고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함께 해주는 신실한 성도입니다. 함께 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친구인 것처럼 영적인 일에도 함께 하며 협력해 주는 동역자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사울왕은 전쟁의 승패가 군사력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두려워 떨었고 백성들도 떨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전쟁은 하나님께 있으며 실제 전투에서도 하나님께 속한 자의 믿음으로 나가 싸웠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블레셋 군인들이 떨었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쳤습니다.

 

사울은 전에 상황이 불리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번제를 드리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번에는 상황이 유리하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묻지 않고 서둘로 군대를 출발시킵니다. 자신에게 불리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요나단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는 상황의 유리함과 불리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뜻을 구하고, 그것을 인내로서 지켜내야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TTz5HBRcoU

 

말씀의 결론입니다.

요나단에게는 있었고 사울에게 없었던 것은 신실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를 승리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믿음,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시며 사용하신다는 믿음,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가지세요. 죽은 믿음, 화석화 된 믿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믿음을 소유하십시오.

이 믿음이 모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줍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5:4)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요나단의 믿음을 주시옵소서.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내 삶의 스타일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 따라 움직이고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기쁨이요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는 복된 날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세상을 이긴 승리는 우리의 믿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주 예수님, 오직 말씀을 믿음으로 승리를 반드시 경험하게 하소서.

 

 

 

www.youtube.com/watch?v=yHnGAEmmMpI

 

(고후 8 16-24)
교회를 세우는 훌륭한 동역자로


 돈 잃고 사람 잃는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 항상 돈이 모이는 곳에 마가 끼기 마련이죠.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항상 조심해야 것이 돈 문제입니다. 바울도 디모데전서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을 한 것도, 항상 돈에 대한 탐욕에서부터 모든 죄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흩어져 있는 교회들로부터 거액의 헌금을 모금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주고자 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박해를 받아 많은 성도들이 흩어졌고, 거기다가 연달아 흉년이 와서 남아있는 성도들은 매우 궁핍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해도, 거액의 헌금을 전달하는 것은 자칫 잘못해서 오해가 생길 수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신중에 신중을 더 했습니다. 특히 돈 문제에 오해가 발생하면 바울의 복음 사역에도 크나 큰 지장 을 초래할 것이 뻔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오해를 피하면서, 선한 일을 잘 마무리 지었을까요?

 

 당시 헌금은 지금처럼 몇 장의 지폐가 아니라 상당한 무게의 은화와 금화였습니다. 그래서 눈에 잘 띄었고, 표적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헌금을 모으고 전달하는 것도 바울이 나서지 않고, 신실하고 믿을 만한 형제 세 명을 세워서 진행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비방하지 못하게 했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선한 것은 물론이고 사람 앞에서도 좋은 일을 바르게 하려고 조심했습니다.

 

바울은 디도와 이름을 밝히지 않는 두 명의 사역자들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오늘 본문이 주는 가르침은 두 가지입니다
.

첫째, 우리도 매사에 신중하게 처리함으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사소한 일로 인해 하나님의 사업이 무너지지 않도록 모든 성도들이 정신을 잘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항상 우리들 서로는 주님의 지체로서 연결되어 있으며, 한 사람이 무너지면 연달아 무너질 수 있음을 알고, 이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하여 말 한 마디라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서로에게 은혜가 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특히 바울이 돈 문제를 조심한 것처럼, 성도들끼리도 돈으로 얽혀 시험에 들지 않도록 돈거래를 하지 마십시오. 누군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차라리 도와줄 수 있는 만큼만 돕고, 거절하십시오. 돈 문제로 얽혀 교회가 큰 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경우가 주변에 많습니다. 부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바울에게 이런 믿을 만한 동역자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런 신실한 사람이 동역자로 붙여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도 신실한 친구와 교사를 붙여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전도자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것은 혹 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른 친구가 그를 일으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마무리 지으려면 신뢰할 만한 사람들과 동역해야 합니다. 단지 인간적으로 친한 사람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올바르고 강건한 사람말입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처럼 우리는 서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라고 부름받은 동역자들입니다. 요즘 은밀하게 이단들이 교회안에 들어와 성도들 사이를 분리시키고, 목회자와 성도들을 불신하게 하는 말을 퍼트려 결국 교회를 박살내는 포도원을 허무는 여우 같은 자들의 활동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나 약점이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주님이 오셔야 완전한 교회가 이루어지지, 사람이 모인 교회는 늘 불안전하고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사랑하고 지켜가려는 동역자들이 많을수록 더 건강하게 바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특히 바울과 동역자들처럼 서로의 짐을 나눠지고 사명의 무게를 감당할 때, 더 온전한 교회로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는 일은 없는지, 조심하십시오.

두 번째 좋은 동역자로 서 주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좋은 동역자말입니다.

 

 우리 모두 바울과 세명의 동역자처럼 주님의 교회를 연합하여 세우는 훌륭한 관계로 사역합시다. 언제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제자로 성장합시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동역이 이뤄지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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