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365장)

인생을 살다 보면 절망적인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사울 역시 그러한 순간에 맞닥뜨렸습니다. 그가 맞서야 될 블레셋 군대는 너무나 강력했고 이스라엘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울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불순종을 선택함으로써 믿음을 지키는 데 실패하게 되는데요.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울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다스린 지 2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블레셋 위협에 대응해서 군대를 소집했는데 소집된 군사의 수가 보잘 것 없었습니다.
블레셋의 대규모 군대에 맞서 싸우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사울이 공식적으로 왕이 된 후 첫 번째 전투라고 할 수 있는 이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패전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1~7절)까지 내용을 보면 사울은 상비군을 3천 명 두었는데 그중에 2천 명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고 나머지 천 명은 아들 요나단과 함께 보냅니다. 요나단이 군대를 데리고 블레셋의 수비대를 기습 공격하자 블레셋이 반격을 준비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사울이 주둔하던 길갈에 모여 싸움을 준비했는데 수적으로 열쇠가 너무 극심했습니다.
5절에 보면 블레셋의 군대 규모를 볼 수 있는데요. “병거가 3만(전차가 3만대), 마병이 6천(말을 타는 기병이 6천), 백성은 해변에 모래같이 많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엄청난 대규모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치러 온 것입니다.
싸우기 위해 모인 백성은 블레의 군대 위용을 보고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굴과 수풀 바위틈과 웅덩이에 숨어버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요단강을 건너 동쪽으로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은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길갈 진영에 남았습니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이야말로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하나님이 이루실 큰 일을 목도할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단 말입니다.

(8~9절)까지는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사무엘이 길갈로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당도할 때까지 이레를 기다리라고 했고 사울은 그의 말을 따라 급박한 가운데서도 이레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의 도착이 지체되자 백성은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더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칭 제사장이 되어 번제를 번재를 드리고 맙니다. 이 상황만 보면 사울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 처한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마저 드는 대목입니다.

그런 위기의 순간이야말로 믿음의 진가가 드러나는 때입니다.
사울은 그 모든 상황에서 순종보다는 융통성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패하면 패하리라 또는 죽으면 죽으리라 이런 믿음의 결단과 순종이 필요한 때인 것을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10~11절) 섣부른 변명을 하는 사울왕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극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요. 오늘 공교롭게도 사울이 번제를 바친 바로 그때 사무엘이 도착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제사를 드린 것을 보고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왜 그랬는지를 해명하게 되는데요. 백성은 겁을 먹고 흩어지고 사무엘은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고 블레셋의 공격은 임박해 오는 상황이었기에 부득이하게 번죄를 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지금 상황 윤리를 적용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상황 윤리(Situation Ethics)란 무엇일까요?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각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제사장이 와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맞지만 이렇게 급박한 상황 속에서는 신속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다는 것이 사울의 상황 논리였던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U3RBHWXVKg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진리는 그렇게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상황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융통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는 순종의 백성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복이 와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가 와요.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의 역사가 펼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하나님이 하실 일을 끝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의 판단력을 의지하고

융통성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도우시리라는 그릇된 믿음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장 큐티 가족 여러분 위기의 순간에 가장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는 길을 여쭙고 믿음으로 그 길을 선택하시는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는 상황 윤리가 아니라 주님의 절대적 진리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상황에도 적용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융통성은 순종이 아닙니다.

융통성을 하나님 말씀 앞에 발휘하지 않게 하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순종하며 주님께서 나아가실 때 우리의 길을 여시고 복된 삶을 펼쳐줄 것을 믿습니다.
오늘 또 융통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모든 축복과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감동을 주시고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찬 463장)

 여호와의 궤가 다곤 신당에 머무는 동안 다곤 신상은 엎어지다 못해 머리와 두 손이 끊어졌습니다
.
언약궤가 지나갔던 블레셋에 아스돗, 가드 에그론 성읍에는 독한 종기 재앙이 일어나 블레셋 사람들이 크게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계획을 세우기에 이릅니다.
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하나님을 경험하면서도 참된 신앙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참된 신앙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블레셋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이기고도 언약궤를 가져왔을 때만 해도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에 7개월을 머무는 동안 전쟁에서 승리한 기쁨은 슬픔과 두려움으로 변했습니다.
언약궤가 있던 지역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몸에 난 종기 때문에 죽을 지경이 되었지요. 결국 그들은 언약계를 다시 돌려보내기로 결정하는데요.

하나님은 블레셋의 성읍에 언약궤가 머무는 7개월 동안 그들의 우상 숭배와 반역을 꾸짖으시고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권능과 심판 앞에서 블레셋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켰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하나님은 심판을 거두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단지 재앙이 없는 편안한 삶만을 생각하다가 구원 받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을 꾸짖으셨듯이 우리 잘못을 징계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개인의 안위에만 몰두하고 고난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중요한 교훈은 놓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돌이키지 않는 죄 문제로 징계가 받을 때가 있음을 알고 혹시 나의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요 ‘돌이키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생각해 보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있을 때는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곧 신앙이 성숙하는 길입니다.

 

 이어서 블레셋의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재앙을 경험하기 전에도 이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바로왕에게 행하신 일들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에 대해서도 알았고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도 참된 믿음의 자리까지 나아가지 못했지요.
하나님과 대면하는 자리를 두려워하면서 자신들에게 재앙을 일으키는 언약궤를 빨리 돌려주는 일에만 몰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신앙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기도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지적으로 아는 것을 뛰어넘어 그분이 경배를 받아 마땅한 분으로 인식하고 확인하는 거룩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우리 가운데 적용해보면 우리는 그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자비를 경험할 수 있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할 수도 있으며 또 그렇게 할 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깊어지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있으나 그분을 인격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의 성숙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는 기회를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기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주님과 인격적으로 대면하는 기회를 끊임없이 가지라는 뜻이죠.
우리가 주님과 늘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진희근 [날마다 천국을 향해]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베일리라는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도 만났는데 그는 평생 농업공학에 몸을 바친 사람으로서 퇴직 후에 히말리아에서 그 지역 사람들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농업 기술이 열악해서 식량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일리가 가진 아쿠아 폴리스라는 기술이 마을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있었습니다.
이 기술은 송어의 분비물을 통과시킨 물을 식물에 공급하고 식물에게 준 물을 다시 회수해 순환시키는 방식입니다.
어의 분비물에는 질산염이 풍부해서 식물의 좋은 비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식물이 질산염을 다 흡수하면 물이 깨끗해져 다시 송어가 그 물을 먹는 방식으로 순환되었습니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송어도 많이 키울 수 있고 곡식도 잘 자라서 식량이 풍부해집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남아프리카 해변에서 멋지게 여생을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주님을 위해서 이곳에 남아 제가 가진 기술을 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기쁘고 감사합니다.”

이 고백을 들은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은 큰 도전을 받습니다.
이 책에서는 자신도 정말 주님을 위해 살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기도문이 실려 있습니다.
“하나님 제게 주신 모든 선물을 복음 전파를 위해 사용하고 싶습니다.주님이 맡겨주신 모든 것을 영원한 보물을 쌓는 일에 사용하고 싶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이런 곳으로 돌아오길 원하십니까? 제가 이런 사람 가운데 살면서 제자를 삼고 목회자를 훈련시키길 원하십니까? 제게 주신 모든 것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주님 진짜 보물 영원한 보물 끝없는 만족을 주는 보물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플랜 목사님의 기도처럼 정말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살려면 주님의 뜻을 알아야 하고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면 그러한 경험이 하나님을 향한 깊은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만약 현실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소홀히 여긴다면 믿음의 성숙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늘 기도하십시오 생활 속에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간구하십시오 주님은 여러분과 저희에게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주실 것이오 또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성숙한 믿음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기도함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dXHtNMJ2Oo 

 

기도합니다.
 사랑의 주 하나님 참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오늘 블레셋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들의 행동을 보고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알았지만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대면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행동을 했고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 저희는 늘 기도하며 하나님과 대면하길 원합니다. 늘 기도 시간에도 기도하지만 기도 시간 외에도 생활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저희가 되게 해주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지혜롭고 분별력이 있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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