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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한다(15) 말씀은 나발과 아비가일의 대조적인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아비가일 같이 분노를 잠재우는 지혜로 많은 사람을 위기에서 구하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윗을 찾아온 아비가일이 땅에 엎드려 모든 죄악을 자신에게 돌리고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간청한 내용을 보면

내 주여 원하건데 이 죄악을 나 곧 네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은 나발이라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아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처럼 아비가일은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었지만 그 집안을 대표해서 다윗에게 사죄함으로 다윗의 분노를 잠재우려 했습니다. 나발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서 그 집단 남자들이 다 목숨을 잃어야 하는 상황에서 아비가일은 잃은 집안 사람들을 구원하려 했습니다.
그녀는 남편 나발이 이름의 뜻대로 미련한 자이므로 다윗이 복수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아비가일의 사죄로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녀의 지혜를 칭찬했습니다.
실제로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자기가 속한 집에서 일어난 죄에 대해 자신이 책임지고 사죄한 것은 그 집안의 실질적 가장이 나발이 아니라 아비가일이었음을 나타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의 범죄로 하나님이 진노하셨을 때 중보자로서 사죄를 구함으로 이스라엘을 멸망해서 구원했습니다.
성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죄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겸손함으로 사죄하여 임박한 진노로부터 공동체를 구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어서 아비가일은 다윗이 분노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나 다윗 스스로를 위해 선한 길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보복을 멈추게 설득했습니다.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다윗이 어떤 이유든 이스라엘 백성을 학살하는 것은 나쁜 이미지로 남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비가일은 지금 다윗이 도망자의 처지이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삼으실 것임을 확신하면서 그에 걸맞는 처신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다윗을 설득했습니다.
다윗도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는 자신이 흥분하여 실수를 저지를 뻔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친이 복수하는 일을 막은 아비가일의 지혜를 칭찬합니다.

이는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명분으로 내세워 이스라엘을 집멸하시려는 하나님을 설득한 것과 같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 무엇을 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분명한 명분을 내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기도를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157) 말씀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먼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이 성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자 우리가 오늘 아비가일이 나발의 죄를 대신해서 다윗에게 사죄하여 집안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해낸 것은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인류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서 구원하신 것과 같습니다 한 사람의 대속 행위로 많은 사람이 생명이 죽음에서 건짐받는 원리입니다.
다니엘도 보면 이스라엘의 민족의 죄를 마치 자기의 죄인 양 금식하며 간구하여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영생을 누리는 성도는 예수님을 따라 많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영적 책임을 느끼고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모든 민족을 위해 복음을 전파해 생명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삶의 현장에서 한 영혼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들이 주님 앞에 구원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중보해야 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야 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과 원수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중보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중보자의 역할이 뭡니까 바로 다리를 놓는 사람 역할이죠.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영원한 중보자 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분노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용서를 받으며 구원받을 수 있도록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비가일의 역할이고 신약 시대 성도가 맡은 복음 전령자의 역할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가 바로 아비가일처럼 우리를 통해서 지옥에 떨어져야 될 불쌍한 영혼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와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일에 복음 전도자로 쓰임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주님 저희를 아비가일처럼 사람을 살리는 중보자로 세워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영원한 중보자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용서를 받으며 구원받을 수 있도록 다리를 잘 놓아줄 수 있는 중보자로 우리가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아비가일처럼 사람을 살리고 구원할 수 있는 일에 지혜롭게 쓰임받는 성도의 길을 가게 해 주십시오.
오늘도 우리의 가는 길에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원합니다. 성령께서 감동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가르쳐 주셔서 오늘도 주님 안에서 귀한 사명 잘 감당해 나아가는 승리하는 성도로 살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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