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312장)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할 때 목적지가 있으면 그곳을 향해 가듯이, 인생에도 목적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따르고 나머지는 정리할 줄 아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대부분의 서신의 마지막 부분에서 실무적 용건을 다루는데 빌립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립보서는 에바브로 디도를 빌립보로 돌려보내서 그를 파송한 교회에 감사를 표현하는 편지인데요.
우리는 바울이 이처럼 감사를 표명하면서도 사실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음에 주목해 봐야 합니다.

먼저 (8~10)까지 말씀 보면 바울이 무엇을 추구하며 사는지 알 수 있는데요.
바울은 결론적으로 바른 삶과 정결한 삶을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8,9)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이것은 종교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바울은 할례를 받았고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켜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일상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유대인들은 ‘샬롬’ 즉 평강을 인사말 쓸 정도로 중시했는데 바울은 이방인이었던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가 유대인이 되지 않더라도 내 가르침을 따르면 ‘평강의 하나님, 샬롬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토록 반복하던 기쁨을 또 강조했습니다.


(10) “내가 크게 기뻐함은
그 이유는 바울에 대한 빌립보의 성도들의 관심이 다시 싹텄기 때문인데요. 바울이 가이사랴에 2년간 갇혀 있다가 로마로 압송되는 동안 빌립보교회와 바울은 제대로 연락이 되지 않는 겨울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그 기간에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자기가 전한 믿음을 흔들림 없이 지키고 있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에서 빌립보교회가 보낸 에바브로디도를 만나 그동안 빌립보 교회가 여전히 신앙의 생명력을 지키고 있었고 마치 봄에 다시 싹이 올라오듯 그 생명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모든 관심은 성도들의 믿음과 거룩함을 지키는 데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처럼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진리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11~13)까지는 ‘늘 깨어 있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요.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복음에서 떠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크게 기뻐하면서도 그들이 후원한 재정에 대해서는 큰 기쁨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가 쓸 것은 직접 일을 조달하면서 여기까지 왔지요. 기근으로 어려움을 당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헌금은 적극적으로 독려했지만 자기가 쓸 것을 요구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빌립보교회가 보낸 후원에 대한 감사 표현은 상당히 절제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지금부터 하는 말이 궁핍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자신을 잘못 해석해서 ‘지금 많이 궁핍하지만 견디고 있다’라는 뜻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안에서 자기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그 안에서 사는 비결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비천만이 아니라 풍부에도 처할 줄 아는 비결을 배웠다는 겁니다.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이 보기에 하나님의 능력은 가난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유할 때에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오직 빌립보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서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그의 목적이었고 현재 어떤 환경에 처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해서 사역을 못한 적도 없었고부유해서 자만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난만큼이나 부유함도 사역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대처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가난하다고 비굴하거나 낙심하거나, 자신을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부유하다고 교만하거나, 남을 무시하거나, 그 물질로 헛된 일에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게 바로 바울이 강조하는 믿음의 균형이죠.

어떤 상황에 처해도 자족할 줄 알고, 감사하며, 겸손한 태도말이에요.

 

 오늘은 김의수, 데이비드 서의 ‘돈 걱정 없는 크리스천’이라는 책의 내용의 일부를 읽겠습니다.

아내와 나 김우수는 처음. 결혼할 때 화려하게 출발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아내는 열심히 공부해서 약학대학에 갔고 약사가 되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었다. 나는 결혼할 때만 해도 아버지 사업이 망하기 전이었으니 조건이 세상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신혼집으로 32평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고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체에서 일하고 있어서 장래도 탄탄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을 가장 최우선으로 보고 서로를 선택했다.
아내와 나는 IVF에서 신앙 훈련하는 과정에서 만나 우리의 중심에 늘 하나님을 모셨다. 만약 아내가 세상적인 조건만 보고 나를 선택했다면 결혼 1년 만에 첫 딸이 장애아로 태어난 사건과 곧이어 시댁의 사업이 망해서 쪽방을 전전해야 했던 시절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신문 배달, 풀 뽑기, 전단지 돌리기 등으로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딸 치료비조차 벌어오지 못하는 무능한 남편을 아내는 격려하며 위로했다. 아내는 아픈 딸을 24시간 돌보느라 어렵게 공부한 약사 자격증을 쓰지 못하는 것도 억울해하지 않았다. 충분히 돈을 벌겠다고 뛰어나갈 만도 한데 아내는 그 좁은 집 안에서 내가 벌어오는 적은 돈에 자족하며 힘든 시절을 묵묵히 이겨냈다. 그 모든 것이 우리 부부 가운데 주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결혼은 반석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이 사람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 위에 지어야 한다 그래야 어떤 풍파 속에서도 가정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조건을 보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사랑의 감정 위에 결혼해 집을 짓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좋은 스펙으로도 실업자가 될 수 있고 많은 돈도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모든 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를 의지해 믿음의 반석 위에 사랑의 결실을 맺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가정도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본질을 놓치지 않는 믿음’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그런 책의 내용이었습니다.

 

결론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군사라는 정체성을 지키면서 세상에 맞서는 자들입니다.

경제적 상황이 고려 대상일 수는 있지만 장벽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자기가 맡은 보직을 성실히 감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능력과 지혜와 모든 상황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떤 힘들고 어려운 그런 조건에서도 주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존귀한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질을 놓치지 않는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vQyXDO8P-M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 예수님 오늘도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사오니 그 평강의 샬롬의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해주옵소서 주님 안에서 항상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균형을 잘 유지하고 지키는 성도로 살게 해주시옵시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분명한 믿음으로 오늘 또 말씀을 의지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시고 주신 모든 사명을 능히 감당해 나아가는 복되고 충성된 주님의 종들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도 주님 본질을 놓치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저에게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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