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399장)

 최근에
‘이럴 때 세 가지를 하지 말라’고 하는 문장을 읽고 많이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기분 좋을 때 약속하지 마라 화났을 때 대답하지 마라 슬플 때 결정하지 마라”입니다. 감정이 나쁘거나 너무 좋을 때 함부로 결정하지 말고 신중하라는 것이지요. 의미가 깊은 말입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면 경솔하게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경솔함 뒤에는 허영 자만 욕심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인의 문제에서 그치면 다행인데 타인과 공동체의 영향을 미치게 되면 큰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울은 초조한 마음에 경솔한 선택을 하는데요.
그의 경솔함이 불러온 과오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사울은 전세가 유리해지자 군사들에게 블레셋 정벌을 마칠 때까지는 전원 금식하라는 맹세를 시킵니다.
아마도 금식하면 하나님이 더욱 도와주시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도우시는 것은 당신의 뜻 가운데서 자발적인 행하심일 뿐 인간의 희생을 대가로 요구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뜻을 이루어 주시는 분으로 여겨 그분의 뜻을 바꾸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순종하는 것이 금식 기도의 목적이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금식의 목적이 아닙니다.

요나단은 블레셋을 ‘할레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6절에서 불렀지만 사울은 블레셋을 ‘내 원수’라고 24절에서 불렀습니다.
요나단은 블레셋을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대적으로 이해했지만 사울에게 블레셋은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개인의 원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사울은 그러면서 맹세를 어기면 저주가 될 것이라고 하며 허기진 군사들을 옥죄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요나단과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욕심 때문에 사람을 도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연합하고 동역해야 합니다.

사울의 맹세를 모르는 요나단은 수풀에 흐르는 꿀을 먹고 기운을 차렸습니다.
나중에 맹세 소식을 알고서 아버지의 겸손한 판단을 지적하는데요. 군사들이 억지로 금식하는 대신 음식을 먹고 힘을 내서 전투를 더 잘 수행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사울왕처럼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면 피해자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말을 절대시하여 강요하지 말고 지혜롭고 유연한 태도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것이 악순환을 끊고 선순환을 만들어가는 복된 선택입니다.


 31절과 32절에 보면 승리가 확정되자 굶주린 군사들은 탈취한 가축을 핏자에 먹는 심각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짐승들을 향해 달려간 그들의 모습은 사울왕의 경솔함을 닮은 듯합니다. 사실 백성은 맹세를 했지만 그 의미를 알지도 못했고 강요에 의한 맹세였기에 짐승을 핏째 먹지 말아야 한다는 율법도 잊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자기 중심적인 경솔한 태도는 타인에게 쉽게 전염됩니다.
달급하고 긴급할수록 경솔함보다 진중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울은 군사들이 믿음 없이 행했다며 책망하는데요. 하지만 그 원인 제공자는 바로 사울 자신입니다.
군사들이 허기에 빠져 이성을 잃지 않도록 적절히 대처했더라면 자신이 미리 군사들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했더라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을 통제 대상으로 바라보지 말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섬기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창세기 25장에 보면 경솔히 여겼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에서인데요. 야곱이 떡과 팥죽을 주었을 때 “에서가 먹고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예수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라”라고 개혁 한글 성경이 되어 있는데요. 개역 개정에서는 ‘가볍게 여김이었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가볍게 여겼단 말입니다. 그것이 에서의 가장 큰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신명기 32장에 보면
”내가 살찌고 부패하고 윤택함에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 구원의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개혁 한글판에 이렇게 돼 있고요 개혁 개정 성경에 보면 ’업신 여겼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 구원의 반석을 경홀히 여기고 업신 여기게 되면 무슨 결과가 찾아오겠습니까?

경솔함은 항상 더 큰 위기를 만듭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IykNGbOkr8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사울의 맹세는 금식의 내용보다 그 동기가 문제였습니다.
그의 맹세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향해 있었고요 자신의 소욕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진정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에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늘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맞추며 그분의 일하심에 여러분을 맡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경솔히 행동하지 않으려면 지혜가 있어야 되고 그 지혜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오는 것입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이시니까요. 오늘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지혜롭게 되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결정을 해서 갈수록 좋아지는 복이 여러분과 저희에게 임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경솔함은 항상 위기를 만든다는 것을 사울왕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우리가 경솔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이 주신 장자의 권한 즉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잘 활용하게 하시고 우리가 주님 앞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림으로 말미암아 나도 복되고 가정도 복되고 교회와 직장의 모든 사람들을 복되게 할 수 있는 참된 복의 근원으로 오늘 하루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분별력과 통찰력과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찬 449장)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 그러므로 말씀은 곧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본문은 이러한 행위를 망령되다라고 일컫고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 앞에 망령대 행하지 말고 말씀대로 따라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본문을 보면 사무엘은 자신을 기다리지 않고 번제를 드린 사울에게 망령되이 행했다며 책망했습니다.
사울은 막강한 블렛의 군대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두려웠습니다.
그는 전쟁의 승패가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해서 사람을 주목했고요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던 겁니다.
(잠언 29장 25절)에 보면 지혜자는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종국에는 승리와 생명과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사무엘은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새롭게 세워질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지도자는 능력이 탁월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왕이 아니라 부족해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무엘이 떠나간 후에 사울은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을 계수했는데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스스로 번제를 드렸지만 이제 남은 백성은 600명뿐이었습니다. 사울이 남은 백성을 개소한 것은 새로운 전술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여전히 자신의 지식을 동원해 위기를 극복하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에서 만나는 위기 앞에서 나의 지식이나 경험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이야말로 개인과 가정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지식임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19~21절)에 보면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에는 철공이 없어서 쇠로된 도구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 의뢰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블레셋 사람들이 철공 기술을 독점하면서 이스라엘에 그 기술이 전수되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무엘상 기자는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는 블렛의 사람들의 말을 언급하면서 철공 기술 전술을 철저히 차단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블레셋은 무기와 관련 없는 농기구만 수리해 주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의 땅에 농기구를 벼리러 자유롭게 드나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은 지금 군사적 대치 상황에 있는 본문과는 달리 불레셋과 이스라엘이 서로 평화롭게 왕래하던 시기가 상당 기간 있었음을 추측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철저히 예속되어 있으면서도 그들과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다는 것은 바로 그들과 타협하고 공존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블레셋과 타협하고 공존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신앙보다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큰 위기로 지금 닥쳐온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결국에는 타협과 공존이 큰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질서에 동화되거나 타협하며 지배받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무기에도 절대적으로 열세였고요 블레셋 군대는 창이나 칼 같은 철제 무기로 무장했지만 이스라엘 군대는 사울과 요나단에게만 철제 무기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워 이길 승산이 전혀 없었음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친히 싸워주셔서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위기의 때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힘과 능력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세요.
자기가 연약하고 상황이 좋지 않다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마세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도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요. 믿음으로 나아갈 때 모든 것을 아름답고 복되게 바꿔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위기는 절대 위기가 되지 못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DXhIElTluU

 

 말씀의 결론입니다.

 위기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때에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상황을 통제하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 지혜를 쏟으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바로 이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기다리며 나아간다면 우리 생활은 기쁠 것이고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이며 우리의 모든 삶은 위기 앞에서 기회로 찾아올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모든 위기를 역전시키시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이 나타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위기가 있습니다. 위태롭고 위험하고 두렵고 걱정되는 그런 상황과 현실이 있습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온전히 신뢰하고 나아갈 때에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주십시오 위기를 극복하게 하시고 위기를 잘 지혜롭게 풀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내가 들어야 될 주님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오늘 내가 깨닫고 순종하며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될 주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가르쳐 주시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그 일을 시작하게 하시옵소서.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고 하셨사오니 그 말에 순종하겠습습니다.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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