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19장)

암소 두마리에 실린 언약궤가 이스라엘 벧세메스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돌아와야 할 곳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크게 기뻐했지만 곧 큰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언약궤 안을 들여다 보고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방심과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는 부담스럽게 여겨야 할까요? 기쁘게 맞아 드려야 할 존재일까요?

 

벧세메스 사람들은 블레셋에서부터 암소에 실려 언약궤가 오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무 수레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번제는 다른 제사와 달리 희생제물의 가죽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재가 될 때까지 태워 드리는 제사법인데, 이것은 완전한 헌신을 다짐하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블레셋에서부터 온 암소를 번제물로 드리는 것은 제사의 정석은 아닙니다. 번제물로 드리는 소는 흠 없는 수소를 드리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들의 전심을 다한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이들은 밀 추수철의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자신들의 곁으로 와 주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뻐하며 영과 진리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수레를 끌고 가는 암소를 블레셋의 다섯 방백은 멀찌감치 따라왔고, 암소가 번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지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이 손수 제작한 금 독종과 금 쥐는 하나님의 완전한 승리물로 상징하는 트로피로 쓰였습니다. 그들은 재앙을 내리신 하나님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과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로 인해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 광경을 보며 하나님의 위엄을 더 크게 느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목격한 그들은 다시 에그론으로 돌아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블레셋 방백들이 돌아갔다는 것을 굳이 성경에 기록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이 없는 곳, 우상 숭배가 만연한 땅으로 돌아간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포기했고, 자신들의 섬기는 신에게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한편 기쁨으로 찬양으로 가득해야 할 벧세메스에 하나님의 갑작스런 진노가 임했습니다. 그것은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 안을 들여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왜 언약궤 안을 들여다 봤을까요? 언약궤가 훼손된 것은 아닌지 염려해서, 아니면 궁금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도에 넘는 호기심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와 같은 성물을 함부러 다루지 말 것을 경고하셨는데요, (민 4장)에서는 여호와의 성소를 들여다 보지 말라시며, 보기만 해도 죽을 것이라 경고하셨습니다. (삼하 6장)에서는 웃사가 제사장 신분인데도 언약궤를 잘못 다루어 죽게 되는 사건도 나옵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언약궤와 성물에 대해 엄히 다루셨을까요?

아마도 언약궤 안을 들여다본 사람들이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안을 들여다 봤더니 별 것 없더라.’ 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떠벌이거나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교만한 죄성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그런 경솔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을 의도적으로 어긴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가볍게 여겼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호기심을 천박한 호기심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눅 23장)에 보면 천박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는 바로 갈릴리의 분봉왕 헤롯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천박한 호기심 상태를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킨다면 어떤 기적을 일으킬 것인가 따위의 아주 천박한 호기심을 갖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 헤롯 황제의 질문에 묵묵무답으로 대응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헤롯 왕은 세상의 구세주를 직접 만났으면서도 아무런 기대도 없었고, 영적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쓸데 없는 호기심으로 질문 몇마디 했고, 예수님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침묵하셨습니다. 결국 헤롯은 아무런 감동도 없었고, 깨달음도 없었고, 영생과도 영영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헤롯왕은 결국 에수님을 직접 만나고, 질문해 봤지만, 결국 영혼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놓쳐버린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나, 천박한 호기김을 가진 벧세메스 사람들이나, 헤롯이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단지 천박한 호기심 대상으로 여겼고, 그게 이루어지지 않자 결국 다 주님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속죄와 영원한 생명이라는 엄청나고 놀라운 구원의 은혜안에 들어오지 못한 가장 비극적인 상태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WD__EBhT0M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을 천박한 호기심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큰 일날 일입니다. 또는 성경을 볼 때도 그저 지적인 연구 대상으로 본다던지, 역사책으로 본다던지, 문학책으로 본다는 것만큼 위험하고 미련한 접근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겸허한 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며, 합당한 영광을 돌리겠다는 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마침내 복을 받는 자리까지 나가야 겠다는 거룩한 목적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대상 1629,30)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999) “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딤전 615~16)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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