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

 

 우리 기독교인에게 믿음과 행함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먹을 것이냐 어딜 갈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요 죽느냐 사느냐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처럼 중요한 주제입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는 본문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이 아무 유익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는 것을 믿음이라고 본다면 귀신들도 한 분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한다고까지 말하며 행함이 없는 믿음에 무용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으면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허탄한 사람인지 꼬집어 말한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아브라함과 라합은 행함을 통해 믿음을 온전하게 이룬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대로 이루시는 분임을 믿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자신의 모든 것인 이삭을 바치는 행함을 통해 온전하게 열매 맺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바알과 아세라보다 높은 신임을 믿은 라합은 하나님께 운명을 맡긴 행함을 통해서 살아있는 참 믿음을 인정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라고 고백하는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핵심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사도는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나의 구주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고백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 고백을 드러내는 행함이 없다면그 믿음은 구원을 주지 못한다(14)’, 유익이 없다. (16), 헛것이다(20), 또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24), 죽은 것이다(26)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그러니까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에 대해서 단호하게 경고하고 있고요 죽은 믿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행위로 증명되는 참된 믿음만이 주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믿음은 입술의 고백만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고백한 믿음이 오직 행함과 순종으로 나타나야만 비로소 진짜 살아있는 믿음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야고보 사도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럼 믿음과 행함을 볼 때 무엇이 먼저일까요?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음이 중요하죠 믿음은 시작입니다. 그러나 행함도 중요하다는 거예요.
믿음 만큼은 아니지만 그 믿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방법이 바로 행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한다고 그것을 쌓아서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요. 그러나 그 믿음이 진짜인가 알려면 행함을 보면 그 믿음이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진짜인지 가짜 믿음인지 포장만 그럴 듯 한지 실제적인 믿음인지 행함을 통해서 그 믿음은 증명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야고보 사도가 가르쳐주는 중요한 성경적 원리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그에 따르는 행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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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김병삼 저, ‘치열한 도전이라는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의 일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1989224일 뉴질랜드로 가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항공기가 호놀룰루 공항을 이륙했다.
이 보잉 747기가 높은 상공에 이르렀을 때 화물칸에 옆문이 뜯겨 나가며 항공기 옆구리에 크게 구멍이 났고 그로 인해 순식간에 승객 9명이 허공으로 빨려나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났다. 이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던 기장은 데이비드 크로닌이었다.
그 긴박하고 급박한 상황에서 기장 크로닌은 38년 비행 경험과 지혜를 짜내야 했다 고장 난 두 엔진의 추진력을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시에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비행 속도를 결정해야 했다.
장거리 비행에 맞춰 연료까지 많이 실은 상태였고 비행기 속도를 낮추는 윙플랩 역시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에도 크로닌 기장은 믿기 어려울 만큼 기적적으로 매끄럽게 항공기를 무사히 착륙시켰다.

얼마 뒤 기자들이 처음. 화물칸 문짝이 날아간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승객을 위해 잠깐 기도한 뒤 곧바로 일에 집중했습니다.”
코로닌 기장은 자신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함으로써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미쳤다.
일터를 사역지로 가꾸는 것은 맡은 일을 탁월하게 해냄으로써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며 그것이 곧 이웃 사랑을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교의 지도자이자 비즈미스맨인 윌리엄 딜러의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스스로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주일 아침에 하는 일과 주중에 하는 일을 연결시키지 못한 채 일종의 이중생활을 이어가는 비극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 이들이 알아야 할 점이 있다. 일상생활 중에 하는 바로 그 활동들이 곧 영적인 일이며 멀리 떨어져 계시는 게 아니라, 이 땅에 살아 움직이시는 하나님과 이어준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영성은 일이 곧 기도라고 속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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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일상생활의 활동들이 곧 영적인 일이다.”

여기서 우리의 삶이 곧 하나님과 세상을 이어준다라고 하는 내용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믿음에 따라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지요.
죄의 본성을 거슬러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맞게 내 뜻을 정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죄와 이기심에서 떠나기로 결단합시다

 

성도는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나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의 차원을 넘어서 행함으로 참된 믿음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오늘 여기에서 말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믿음이 증명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uPyAm7IYLw 

기도드립니다.

살아계신 주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야고보 사도를 통해서 주님의 뜻을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돼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이 말씀을 잘 기억하고 믿음이 먼저고 믿음이 우선이지만 행함이 믿음을 증명할 수 없다면 그 믿음은 헛것이요, 무용하다고 하는 이 귀한 진리를 잘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곳에서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이 삶의 자리에서 일상에서 믿음을 행함으로 증명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해주십시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오늘 또 우리의 믿음이 행함으로 증명되는 그런 가치 있는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성령님 인도하시고 감동 주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212)

 

우리 삶은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은 나의 삶이 온통 문제 투성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뒤틀리고 인생이 복잡하게 꼬일 때 우리는 신년에도 당황하고 분노하고 좌절할지도 모릅니다.

삶이 뜻대로 안 되고, 문제가 복잡하게 꼬여올 때, 이렇게 하라고 오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맏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2-4).

 

사람들이 시험은 안 좋아하는데 하나님은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성경에서 시험은 두 종류죠. ’Temptation(유혹)‘이 있고, 유혹은 사탄의 욕심이 우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Testing(시험)라 불리는 시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테스팅을 허락하시는 것이죠.

 

우리가 받는 여러가지 시험은 시련일까요, 유혹의 시험일까요?

오늘 (3)에서 이렇게 정리해 주십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시험이든 유혹이든 결국 다 믿음의 시련이라는 것이죠. 믿음을 성장시키는 시련이 된다는 것이죠.

 

(2)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원어: 당할 때마다의 뜻이다)

영어성경 IF(만약)을 쓰지 않고 whanver(언제든지, 아무때나)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너희가 여러가지 시련을 당할 때마다, 닥칠 때마다"의 뜻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시련은 파도와 같다고 말합니다. 지나가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덮쳐오는 큰 파도 같은 것이라는 거죠.

때로는 경제적 문제, 가정의 문제, 관계의 관계, 자녀들 때문에 힘들어 하고 건강문제나, 또 자신의 잘못 때문에, 어떤 사람은 타인의 잘못 때문에 시련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련이 닥칠 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어떻게 하면 이 시험과 시련이 믿음의 시련이 되게 할 수 있을까요?

첫째, 당신에게 오는 시련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2) “형제들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련이 기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기뻐할 수 있는 기회다라고 야고보 사도는 가르쳐줍니다.

어떻게 기뻐할 수 있나요? 여기 중요한 단어가 여긴다입니다.

시련가운데, 기뻐할 수 없지만 기쁘게 여기라”, , 그렇게 간주하라, 그렇게 결정하라 마음으로 정하라는 말입니다.

기뻐할 수 없지만 기쁨으로 여겼던 경우가 있을까요?

(5)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전하다가 시련을 당했는데, “사도들의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기뻐하면서 공회앞을 떠나니라(41)“ 고난, 핍박가운데, 시련가운데 있었지만 오히려 기뻐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죠.

 

사도 바울 빌립보 감옥에서 갖혀서 고통을 당하는 중에도 기뻐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십시오!”라고 가르쳤습니다.성장큐티 가족 여러분, 새해에도 시련을 올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쁘게 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오지만,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고 나가면 이것은 도리어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왜 믿음의 시련이 복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시련이 저절로 축복이 되지는 않습니다. 인내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군대 훈련소에서 훈련병으로 고생을 해야 합당한 계급장을 받게 되는 것처럼, 인내가 없이는 성장도 없고, 성숙도 없어요. 성장과 성숙이 없는데 복이 주어지고 환경이 좋아진다면 그것은 결코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왜죠? 감당하지 못하니까요.

 

여러분도 수없이 주변에서 감당할 수 없는데 재물이 주어져서 타락하고, 가정이 깨지고, 더 탐욕적인 사람이 되고 허망하게 된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그게 무엇이든지 감당할 수 있어야 복이 됩니다. 건강이든, 직위든, 명예든 말이죠.

 

공기의 저항없이 독수리가 날 수 없고, 부력이 없이 배가 물위에 뜰 수 없듯이, 온순한 바다에서 노련한 뱃사람이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성경은 여러분과 저의 삶 가운데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과 가깝게 하시고,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모습으로 자라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시련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불만족이 아닙니다. 성숙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이것을 알 때 시련을 성숙의 기회로 보게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변함없는 진리가 있습니다. 시련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요, 성숙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여기 인내는 우리가 과거에 알던 참을 인()자 세 개를 쓰는 무조건 참는 뜻이 아닙니다. 무조건 참으면 홧병이 돼요.

본문의 인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앞에 나를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즉 성도의 인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가는 것입니다.

ㅎ의 시간과 방법에 나를 맡기고 그 은혜가운데 붙잡힌 바 된 것을 인내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포기하지 말라! 붙잡고 메달리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은 인내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syaying power’ 머물러 있는 힘, 쓰러지지 않고 머물러 있는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운동회에서 단체 줄다리기 할 때, 있는 상대편이 잡아 당길 때, 있는 힘을 다해 줄을 잡고 버티고 있어야 하죠. 이게 바로 syaying power입니다.

이게 인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때는 자신만만한 때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안에서 불가능은 없다를 외치며 산의 정상가운데 서서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힘들어하나? 조금만 더 참고 올라오면 나와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다고 가르쳤던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원인을 알 수 없는 사소한 일로 인하여 미끄러졌고 자신이 골짜기의 구렁텅이에 박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빠져나오려 해도 이 구렁텅이를 벗어날 수가 없는 환경과 점점 용기를 잃어가는 자신의 상태를 봅니다. 정상에 서서 자신만만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자신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는 줄을 단단히 붙잡고 syaying power를 해야 할 시간입니다. 결국 그 줄이 당신을 당겨낼 것입니다.

모세에게 만약 미디안 광야 40년의 훈련과정이 없었다면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40년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갈수록 미궁에 빠지는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에 보면 요셉의 불평을 들어 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지켜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밧줄이 자신을 끌어 당길 때까지 기다린 것이죠.

하나님의 때가 오자, 요셉은 형들의 큰 실수를 용서해주는 큰 사람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왕의 살기등등한 위협가운데서도 그렇게 도망다니며 인내하는 광야생활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시편에 기자가 되어 깊은 묵상으로 많은 사람의 심령을 울릴 수가 있었겠습니까?

 

오늘, 새해를 맞이하는 여러분과 저에게 야고보 사도를 통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인내를 이룸을 통해서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게 하겠다.

그러므로 너희가 당하는 시련도 기쁘게 여기라!‘

 

새해에도 시련은 오고, 유혹도 오고, 연단도 옵니다. 꽃길만 걷는 것은 없어요. 꽃길만 걸으면 사람 망칩니다.

하지만 신발 밑창에 꽃을 깔면 밟는 곳마다 꽃길이 됩니다.

우리의 발 밑창에 깔아야 할 것은 바로 시련도 기쁘게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맡기는 인내를 이루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저 말씀의 줄을 단단히 붙잡고 syaying power를 한다면, 주님은 그 줄을 통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주십니다.

올 한 해 시련이 없다고 믿는 미숙한 신앙이 아니라, 시련속에서도 성장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O_voKGggjE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아버지시오, 창조자시오, 목자가 되시며, 동행자 되시는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시련과 시험과 유혹속에서도 성장하고 익어가는 성숙한 성도로 살게 해 주십시오. 성령님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 말씀을 통해 깨닫고, 바로잡고, 온전히 세워지는 강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를 성장시켜 주시옵소서. 그래서 마침내 어떤 복도 능히 감당해 내는 예수님의 제자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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