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212장)
우리 삶은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은 나의 삶이 온통 문제 투성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뒤틀리고 인생이 복잡하게 꼬일 때 우리는 신년에도 당황하고 분노하고 좌절할지도 모릅니다.
삶이 뜻대로 안 되고, 문제가 복잡하게 꼬여올 때, 이렇게 하라고 오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맏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사람들이 시험은 안 좋아하는데 하나님은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성경에서 시험은 두 종류죠. ’Temptation(유혹)‘이 있고, 유혹은 사탄의 욕심이 우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Testing(시험)라 불리는 시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테스팅을 허락하시는 것이죠.
우리가 받는 여러가지 시험은 시련일까요, 유혹의 시험일까요?
오늘 (3절)에서 이렇게 정리해 주십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시험이든 유혹이든 결국 다 믿음의 시련이라는 것이죠. 믿음을 성장시키는 시련이 된다는 것이죠.
(2절)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원어: 당할 때마다의 뜻이다)
영어성경 IF(만약)을 쓰지 않고 whanver(언제든지, 아무때나)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너희가 여러가지 시련을 당할 때마다, 닥칠 때마다"의 뜻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시련은 파도와 같다고 말합니다. 지나가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덮쳐오는 큰 파도 같은 것이라는 거죠.
때로는 경제적 문제, 가정의 문제, 관계의 관계, 자녀들 때문에 힘들어 하고 건강문제나, 또 자신의 잘못 때문에, 어떤 사람은 타인의 잘못 때문에 시련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련이 닥칠 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어떻게 하면 이 시험과 시련이 ‘믿음의 시련’이 되게 할 수 있을까요?
첫째, 당신에게 오는 시련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2절) “형제들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련이 기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기뻐할 수 있는 기회다라고 야고보 사도는 가르쳐줍니다.
어떻게 기뻐할 수 있나요? 여기 중요한 단어가 “여긴다”입니다.
시련가운데, 기뻐할 수 없지만 “기쁘게 여기라”, 즉, 그렇게 간주하라, 그렇게 결정하라 마음으로 정하라는 말입니다.
기뻐할 수 없지만 기쁨으로 여겼던 경우가 있을까요?
(행 5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전하다가 시련을 당했는데, “사도들의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기뻐하면서 공회앞을 떠나니라(41절)“ 고난, 핍박가운데, 시련가운데 있었지만 오히려 기뻐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죠.
사도 바울 빌립보 감옥에서 갖혀서 고통을 당하는 중에도 “기뻐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십시오!”라고 가르쳤습니다.성장큐티 가족 여러분, 새해에도 시련을 올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쁘게 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오지만,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고 나가면 이것은 도리어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왜 믿음의 시련이 복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시련이 저절로 축복이 되지는 않습니다. 인내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군대 훈련소에서 훈련병으로 고생을 해야 합당한 계급장을 받게 되는 것처럼, 인내가 없이는 성장도 없고, 성숙도 없어요. 성장과 성숙이 없는데 복이 주어지고 환경이 좋아진다면 그것은 결코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왜죠? 감당하지 못하니까요.
여러분도 수없이 주변에서 감당할 수 없는데 재물이 주어져서 타락하고, 가정이 깨지고, 더 탐욕적인 사람이 되고 허망하게 된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그게 무엇이든지 감당할 수 있어야 복이 됩니다. 건강이든, 직위든, 명예든 말이죠.
공기의 저항없이 독수리가 날 수 없고, 부력이 없이 배가 물위에 뜰 수 없듯이, 온순한 바다에서 노련한 뱃사람이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성경은 여러분과 저의 삶 가운데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과 가깝게 하시고,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모습으로 자라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시련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불만족이 아닙니다. 성숙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이것을 알 때 시련을 성숙의 기회로 보게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변함없는 진리가 있습니다. 시련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요, 성숙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여기 인내는 우리가 과거에 알던 참을 인(忍)자 세 개를 쓰는 무조건 참는 뜻이 아닙니다. 무조건 참으면 홧병이 돼요.
본문의 인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앞에 나를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즉 성도의 인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가는 것입니다.
ㅎ의 시간과 방법에 나를 맡기고 그 은혜가운데 붙잡힌 바 된 것을 인내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포기하지 말라! 붙잡고 메달리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은 인내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syaying power’ 머물러 있는 힘, 쓰러지지 않고 머물러 있는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운동회에서 단체 줄다리기 할 때, 있는 상대편이 잡아 당길 때, 있는 힘을 다해 줄을 잡고 버티고 있어야 하죠. 이게 바로 syaying power입니다.
이게 인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때는 자신만만한 때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안에서 불가능은 없다’를 외치며 산의 정상가운데 서서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힘들어하나? 조금만 더 참고 올라오면 나와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다고 가르쳤던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원인을 알 수 없는 사소한 일로 인하여 미끄러졌고 자신이 골짜기의 구렁텅이에 박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빠져나오려 해도 이 구렁텅이를 벗어날 수가 없는 환경과 점점 용기를 잃어가는 자신의 상태를 봅니다. 정상에 서서 자신만만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자신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는 줄을 단단히 붙잡고 syaying power를 해야 할 시간입니다. 결국 그 줄이 당신을 당겨낼 것입니다.
모세에게 만약 미디안 광야 40년의 훈련과정이 없었다면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40년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갈수록 미궁에 빠지는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에 보면 요셉의 불평을 들어 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지켜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밧줄이 자신을 끌어 당길 때까지 기다린 것이죠.
하나님의 때가 오자, 요셉은 형들의 큰 실수를 용서해주는 큰 사람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왕의 살기등등한 위협가운데서도 그렇게 도망다니며 인내하는 광야생활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시편에 기자가 되어 깊은 묵상으로 많은 사람의 심령을 울릴 수가 있었겠습니까?
오늘, 새해를 맞이하는 여러분과 저에게 야고보 사도를 통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인내를 이룸을 통해서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게 하겠다.
그러므로 너희가 당하는 시련도 기쁘게 여기라!‘
새해에도 시련은 오고, 유혹도 오고, 연단도 옵니다. 꽃길만 걷는 것은 없어요. 꽃길만 걸으면 사람 망칩니다.
하지만 신발 밑창에 꽃을 깔면 밟는 곳마다 꽃길이 됩니다.
우리의 발 밑창에 깔아야 할 것은 바로 ’시련도 기쁘게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맡기는 인내를 이루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저 말씀의 줄을 단단히 붙잡고 syaying power를 한다면, 주님은 그 줄을 통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주십니다.
올 한 해 시련이 없다고 믿는 미숙한 신앙이 아니라, 시련속에서도 성장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O_voKGggjE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아버지시오, 창조자시오, 목자가 되시며, 동행자 되시는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시련과 시험과 유혹속에서도 성장하고 익어가는 성숙한 성도로 살게 해 주십시오. 성령님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 말씀을 통해 깨닫고, 바로잡고, 온전히 세워지는 강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를 성장시켜 주시옵소서. 그래서 마침내 어떤 복도 능히 감당해 내는 예수님의 제자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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