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이 좋은 자동차일수록 브레이크가 좋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성능이 재앙이 됩니다.

인간은 피조물 중에서 가장 뛰어났지만, 죄에 대해 브레이크를 밟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고, 에덴에서 쫓겨나는 수치를 당할뿐 아니라, 지옥으로 떨어지는 운명에 처박히고 맙니다.

고장난 인간의 악한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끝 간데 없이 타락으로 치닫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타락과 죄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 분입니다.

시편 36편은 지독하게 부패한 인간의 죄성과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밝히는 내용입니다.

이 시편은 타락한 인간의 실상을 거짓없이 드러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대조하면서,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를 높이시고 악인들에게 벌을 주시는 분임을 가르쳐줍니다.

 

첫 번째 (1-4절)까지 인간의 부끄러운 죄성을 거짓없이 폭로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눈이 어두운 짐승같아서 마음속에 하나님을 뭣하러 두려워해야 하느냐고 항의하죠.

눈빛은 죄를 짓고도 뻔뻔해져서 ‘불법은 드러나지 않고, 미움도 받을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고,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죄악과 속임수 뿐이고, 잠자리를 누울 때마다 흉계를 꾸미며, 길거리에서 제멋대로 설칠 뿐 아니라, 불장난을 하면서도 누가 화상을 입든 개의치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양심은 마비되었고, 마음은 더 이상 회개의 자리로 나가고 싶어하지 않을 만큼 굳어버린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심장처럼, 이제 스스로는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영적 타락의 상태가 바로 인간의 추악한 민낯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는 인간이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것입니다.

 

이와 다르게 5-12절은 하나님의 우월성을 드러냅니다.

이 부분을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드높고, 그분의 성실하심은 끝이 없다.

그분의 목적대로 원대하고, 그분의 평결 드넓다.

광대하시되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으시니

사람도, 생쥐 한 마리도 그분께는 소외되는 법이 없다.”

그러면서 7절에서 이렇게 감탄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피하나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4가지로 묘사하는데

첫째 무진장의 인자를 지니신 하나님

둘째, 범할 수 없는 진리의 하나님

셋째, 이론의 여지가 없으신 하나님

넷째, 인간이 감히 탐색할 수 없는 지혜와 모략에 뛰어나신 하나님입니다.

이런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입에서 찬송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의 집에서 살진 것으로 풍족하게 되고, 생명의 원천에서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복락의 강수로 마시게 하시리이다

다윗은 주님을 아는 자들에게서 주의 인자하심을 끊어지지 않고 계속 베풀어 달라고 간청합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11-12)은 교만한 자가 맞이할 최후입니다.

교만한 자의 발이 미끄러져서 넘어지게 하셔서, 자신에게 미치지 못하게 하시며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해달라고 구하며 시를 끝맺습니다.

 

이 시편을 읽다보면 문제가 하나 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과연 독자인 나는 다윗이 말하는 하나님의 그늘아래 피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좋아도, 그 아래로 들어갈 수 없다면, 아무 혜택을 누릴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선택한 백성들이 복을 누리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당신의 인자, 헤세드 안에 들어오라고,

당신의 보호아래에서 생명의 원천이신 복락의 생수를 마시고,

주님의 집에서 살진 것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고린도후서 5에서 바울은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는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죄인이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인자인 헤세드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것,

타락한 인간의 자리에서 나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예수께서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신 것입니다.

 

(적) 여러분은 살면서 죽을 뻔한 위기나, 매우 위험한 곳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온 경험이 있습니까?
사회학자들이 조사한 바로는 사람들이 평생동안 죽을 뻔한 위기를 몇 번씩은 겪는다고 합니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우도 있고, 한 발자국만 더 나갔더라도 큰일 날 뻔한 자리, 납치당할 뻔한 위기, 체온이 1도만 더 올랐어도 생명이 위독해지고, 조금만 삐끗했더라면 큰 낙사사고를 당할 뻔했던 경험등....

사실 잠깐의 차이 때문에 사고가 나기도 하고, 무사히 지나가기도 하며, 살기도 하고, 죽게도 됩니다.

그 위험천만한 순간에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빼면 해석할 수 없는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가 어찌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고, 목소리를 높여 찬송하는 것을 주저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생명이 주님께 속한 것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을 입고 살아왔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걸 인정할 때, 오늘 시편 36편이 달라 보이고,

이렇게 건강하게 아침을 맞이한 것이 달라보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시편 기자의 찬송을 내것으로 만들어 부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지 그리 보배로우신지요!”라고 말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너무나 오묘하고 기가막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나와 함께 하셨음을

우리 함께 찬양하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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