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CHARACTERS Deux personnages.


(
찬585장)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는 경우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형식적인 신앙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경우입니다. 이러한 실패 원인을 깨닫고 돌이켜 영적 전투에서 우리가 승리해야 하는데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영적 전투에서 패하는 성도의 삶의 원인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본문을 살펴보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하게 되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이스라엘이 패하게 하셨는지를 물으며 탄식하게 됩니다. 패배 이유는 뭘까요?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리와 비느하스 때문이었습니다.
 홉리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여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재물을 강탈한 것과 희망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한 죄로 인해서 그들이 한 날에 죽을 것을 하나님이 예고하신 것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귀중히 여겨 그들의 범죄를 막지 못한 죄를 물어 그 가문의 저주를 내리실 것이고 홉리와 비느하스의 죽음이 그 표정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아이성 전투 때도 아간의 범죄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패배했었지요.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영적 전쟁은 하나님 앞에 죄가 있으면 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원리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인데요.
그러므로 성도와 교회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들 안에 있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에스겔 18장 31,32절)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이 말씀의 의미는 너희가 회개하고 모든 범죄에서 떠나 돌이키면 죄가 장애물이 되어 너희를 넘어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은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서 죽고자 하지 말고, 살고자 하는 인생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죽을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살아라. 그리하면 용서해 주겠다.
 회개하고 살아라. 그리하면 내가 너의 죄를 사해주겠다.
 회개하고 살아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형통하게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내 안에 있는 죄가 없는지 생각해 보고 회개합시다. 회개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는 여러분과 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Jerusalem - The Holy City

 이어서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습니까? 결국,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하게 됐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세우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하기로 결단합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도, 법궤를 앞세워 기적의 역사를 체험했으므로 법궤를 앞세우면 자동으로 승리가 따라올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큰 착각이었지요. 전쟁에서 승리하기는커녕 크게 패배해서 전사자가 3만 명에 이르게 됐고 이스라엘의 언약궤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언약궤를 앞세운다고 하나님이 자동으로 함께하시며 승리를 안겨주시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지킴으로 임마누엘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신앙의 본질을 망각하고요 법궤만 있으면 승리한다는 형식적인 신앙에 빠진 결과입니다.
성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인 신앙으로 넘어지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승리의 삶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길을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만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가 대패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아이성 전투 때 하나님께 여쭤보지 않고 나섰다가 패배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먼저 기도했더라면 하나님이 아간의 범죄를 해결하고 전투에 나설 것을 명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승리에 대한 확답을 얻은 후에 전투에 나가는 것이 승리의 원칙입니다.

오늘날 성도가 교회와 영적 싸움을 하는 일에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영적 전투를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명하면서 성령 안에서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해 구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말씀과 무관한 신앙 말씀에 의존하지 않는 신앙은요 미신과 같아서 허무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미신을 신봉하는 사람은 부적과 같은 것이 무슨 효험이 있는 줄을 알고 그것을 크게 믿고 의지하다, 자신들의 기대대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제야 큰 허무감과 패배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 대신 언약궤를 의지했던 이스라엘이 바로 그와 같은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씀과 무관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아무리 예배를 거룩하게 드리고, 종교적 의식에 열심히 참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미신과 같아서 우리 또한 큰 허무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진정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며 또한 그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할 때 의미가 있고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신앙의 반석이자 기초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11uILQJZHI

 (시편 1편) 말씀은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합니까? “오직 여호와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 말씀에서는 “갓난아이들과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록 1장 3절) 말씀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의 기초가 하나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원래 영적 전쟁에서 패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언제 패하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할 때, 기도하지 않을 때 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십시오. 성령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십시오.

그 말씀의 검을 휘둘러서 마귀를 물리치고 사단을 대적하십시오. 여러분 가는 길에 형통이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 함께 계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길을 여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성도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저희가 되게 해주옵소서 법궤를 부적처럼 믿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패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형식적이고 외식하는 신앙생활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주님 저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사랑하고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말씀으로 세상과 싸우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의 수종을 들어서 말씀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과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복된 성도 되게 주십시오.

 

 



(
찬 94장)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이왕이면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간증이나, 극적인 이야기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새롭게 하소서’같은 방송에 나와 간증하는 사람이 부러워 하기도 하는데요. 내가 믿는 예수님을 자부심을 가지고 이야기 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날 부러워하고, 나처럼 되길 원하는 마음을 갖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자랑할 만한 조건을 갖춘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님을 자랑하길 원하는데, 하지만 성경을 보면 어떤 조건을 갖춘 사람이 되어 자랑만하지 말고, 자신이 처한 삶의 환경에서도 부끄러워 하지 말고 예수님을 유일한 자랑으로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얼마나 육체는 곤고하고, 마음이 지쳤겠습니까? 하지만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해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당부합니다. 여기서 왜 ‘주 안에서’라는 말을 썼을까요? 세상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어떤 환경을 초월해서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고 키우면서 이미 큰 보상을 받습니다. 사랑스런 자녀가 커가는 것을 보고 큰 위안과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자녀의 존재는 곧 부모의 기쁨인 것이죠. 그런데다 자녀가 재롱을 부리거나, 사랑을 표현하면 힘든 인생 길도 견딜만한 것이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부모의 기쁨이듯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안에서 기쁨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을 떠나서는 그 무엇도 참된 기쁨과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뭔가를 사고, 얻으면 잠시동안 행복하고 만족한 것 같지만,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의 마음에 참된 기쁨과 안식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주안에서만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오직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1~3)까지 바울은 유대인들을 경계하라고 거듭 당부하며 육체가 아닌 그리스도를 자랑하라고 가르칩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안에는 육체의 할례를 받은 것을 구원의 표식으로 여기며 자랑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바울은 단호한 어조로 경고하며, 오직 성령으로 봉사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사람이 진정한 할례파라고 말했습니다.


또 바울은 (4~8)까지는 바울 자신도 얼마든지 자랑할 만한 조건들이 있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다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예수님을 알기 전에 자랑으로 여겼던 모든 조건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아무 영적 유익도 주지 못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왜 바울은 자랑할만한 환경이나 조건들을 갖고 있음에도 모두 해로 여기고, 무가치하게 여기는 걸까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가장 고상하다는 말은 가장 귀하고 탁월하다는 뜻이죠. 거기에 견줄 바가 전혀 없다는 것이죠.

 

 바울은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베냐민 지파 출신이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 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으로 철저히 율법을 지키며 살았던 사람이기에 율법으로 흠 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렇게 자기 소개를 하는 이유는 내가 이 정도로 율법을 철저히 지킨 사람이야라는 자랑을 하려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에수님을 만나고 보니, 내가 자랑스러워 하던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 줄 알았다는 확실한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심지어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탁월한 신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9)에 보면 바울 자신이 받은 의롭다는 의는 율법을 철저히 지켜서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중에 하나가 뭐죠? 바로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이 있어야 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율법을 보면 내 죄가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나님께 잘못했는지 알 수 있단 말입니다. 죄를 깨달았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가 우리 죄를 사해 주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죄를 사했다는 쪽으로 가야 하고, 십자가 앞에 엎드려 나를 위해 피흘려 죽으신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 행실로 의로워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심으로서의로워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도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을 선물로 받은 자로서, 자랑하고, 찬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8hjU_6z73c

 말씀의 결론입니다.
바울은 고난과 곤고함 속에서도 자신보다 거짓 가르침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빌립보 교인들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진정한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신 예수님안에서 기뻐하며 살라고, 그분을 자랑하며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 세상적 가치관을 따라 육체와 환경만 자랑하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따라 예수 그리스만을 자랑하고 높이는 성도로 사십시오. 그것이 복이요, 그것이 참된 승리의 길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 예수님, 우리의 죄악을 짊어지시고 죽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주님의 은총임을 알고, 내가 예수 믿은 것이 주님의 은혜였음을 알고 찬양하며 자랑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내 자랑을 위해서 주님의 능력이 필요한 자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을 자랑할 줄 아는 신실한 성도로 살게 하소서. 오늘도 육체를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나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주님을 자랑하는 성도로 살게 하옵소서.

 

 

(찬 351장)

오늘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의 말씀을 통해서 성도의 삶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의 고민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22,23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죽는 것이 나은지, 사는 것이 나은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죽고 사는 것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영적 성숙과 진보를 위해서는 자신이 더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의 개인적인 소망은 이 땅에서 육신의 옷을 벗고, 천국에 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야 되는 이유가 있다면 주님께서 맡겨주신 교회, 즉 영혼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바울은 (27절)에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라는 것은 하나님나라 천국백성으로써 천국의 시민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천국의 백성답게 사는 합당한 생활은 무엇일까요?

 

첫째,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서 협력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마음으로 서 있다라는 표현은 가만히 서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앞둔 군사들이 우와 열을 맞춰 전쟁터를 향해 행진하는 모습을 뜻합니다. ‘협력하다’를 NIV성경에서 컨텐딩 애즈 원 맨 contending as one man’. ‘하나가 되어 싸우는 것’을 뜻합니다.

복음의 신앙을 위해서 하나되어 함께 싸우는 모습이 천국 백성의 합당한 삶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빌립보 교회의 리더는 바울이죠. 그런데 그는 지금 감옥에 잡혀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도 사로 잡혀간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건강에 잡혀 있고, 어떤 이는 경제적 문제에 잡혀 있고, 어떤 이는 나쁜 감정에 잡혀 있고, 어떤 이는 나쁜 습관에 잡혀 있습니다. 이처럼 악한 마귀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도록 오늘도 집요하게 사로잡힐 만한 문제들로 단단히 결박하고 있습니다.

 

결국 악한 마귀가 바라는 것이 뭘까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힘을 잃고 더 이상 일어나길 포기하길 원합니다. 기도생활을 포기하고, 희망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간계를 씁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에게 ”그런 마귀를 대적하여서 싸워야 한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하나가 되어 싸우라는 것입니다.

과연 천국의 백성답게 사는 합당한 생활은 무엇일까요?

둘째, 무슨 일에든지 두려워 아니하는 것입니다.

(28)을 보세요.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마귀가 성도들을 가장 잘 넘어지게 하는 비결은 두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 두려움일 것입니다.

전쟁에서 최고의 전술은 뭘까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죠. 어떻게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을까요? 적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면 이기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겁을 먹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겁을 먹으면 싸워보기도 전에 이미 이긴 것이나 진배가 없게 되겠죠.

우리가 자주 환경을 바라보고, 내 약한 몸을 바라보고 한숨이 터져나오고, 이제 무엇을 하겠나라고 생각하며 자포자기하려 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11)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입니다. 우리가 이제 무엇을 하겠나 주저 앉고 싶을 때가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좋은 때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힘이 다 빠져서 어느 것도 하기 싫을 때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요, 주님이 은혜를 부어주실 때입니다.

(14)에서 홍해 앞에서 두려워 하고 있었던 백성들에게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외쳤습니다.

본문 (29)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 믿도록 은혜를 주신 것은, 주님을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려는 것이라!

또 이 부분을 새번역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특권도 주셨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GkQ3Z6w3_U

성장큐티 가족 여러분, 어떻게 하면 고난이 특권이 될 수 있을까요?

내가 당하는 고난이 주님을 위한 고난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질병이 있습니까? 그 질병이 주님을 위한 고난이 되게 하세요. 가난이 있습니까? 역시 그 가난이라는 고난이 주님을 위한 고난이 되게 하세요. 실패가 있습니까? 역시 주님을 위한 고난이 되게 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돼죠? ”주님, 이 고난을 통해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이 고난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길 원합니다.”라고 기도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장큐티 가족 여러분,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은 첫째,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즉 싸우는 것이다. 이단들과 세상의 헛된 지식과 타락한 문화와, 우리를 사로잡고, 두렵게 하는 마귀와 싸우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바울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협력합시다. 그리고 당당히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갑시다. 주님은 함께 하실 것이요, 우리를 당신의 오른 팔로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바울을 통해 하나님 백성의 삶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온라인으로 만났지만 한 마음, 한 뜻으로 복음 신앙을 위해 협력하게 하소서! 우리에게 뜨거움을 주시고, 협력하는 마음을 주셔서 세상과 마귀와 싸우기 위해 일어나게 하소서. 우리에게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 두려움의 문제들은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러갈지어다! 보혈의 능력으로 명하노니 떠나갈 지어다! 이미 이긴 싸움이니, 끝까지 밀고 전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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