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어떤 사람은 신념으로 살고, 어떤 사람은 신앙으로 삽니다. 신념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믿음에서 출발하는데요, 신앙은 신념과 다르게 자신이 틀릴 수 있으며, 항상 옳은 것은 하나님이라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갖게 만든 것은 이성의 판단이지요. 그러나 이성이란 바람앞에 촛불처럼 불안전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이성은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며, 확실하게 확정된 것 같은 것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모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그분의 지혜는 온전합니다. 그래서 성도인 우리는 이성에 기반한 내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는 것이 복이요, 삶의 성공 비결입니다. 오늘 전도자는 우리가 따라야 할 삶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전도자는 (15~18)에서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고, 지나치게 지혜자나 우매자가 되지 말라고 조언하며 지나침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인생을 미지근하게 대충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의에 빠지거나, 지나치게 악에 빠져 넘어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완전한 의인의 삶이란 이 땅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의를 추구하며 살더라도 항상 자신은 죄인이기에 실수와 허물이 있는 존재임을 자각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는 사람은 남의 허물이나 실수에 대해서도 관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옳다는 신념이 강한 사람은 남의 허점이나 실수를 보면서 냉소하거나, 비판하고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자신은 더욱 오만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전도자 솔로몬은 (19)에서 한 사람의 지혜가 많은 권력자보다 능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도자 자신이 수많은 권력자들을 만나 경험하면서 얻게 된 결론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는 지식이나 총명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지혜는 하나님을 알아보는 영적 안목을 의미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전도자는 (21~22)에서는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거나 저주하는 말도 마음에 두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사람이 누군가의 평가하는 판단에 민감하기 마련이죠. 자신이 좋아하거나 인정받고 싶은 사람에게는 더욱 예민해 지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웃거나 울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잘못된 평가를 내리기도 하며, 그 평가가 다 옳은 게 아니기 때문이죠.

 

전도자는 살면서 많은 노력으로 지혜와 명철을 얻으려고 했으나 오히려 지혜는 더 멀어졌고, 이제는 한계를 절감했다고 고백합니다(23). 또한 전심으로 인생을 돌이켜 살피고 연구한 끝에 세가지 현실을 절감했다고 말합니다. 죄와 유혹이 죽음처럼 치명적이라는 것, 세상에서 지혜자를 찾기 어렵다는 것,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지만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어리석게 산다는 점입니다(15~29).

 

이러한 전도자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우리는 전도자의 가르침을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하며, 이뤄내야 보다 행복하고 멋진 성도의 삶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전도자가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께서 지혜의 근본이라는 뜻이지요, 그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옳다는 신념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이요, 옳으신 분이라는 인정을 더 자주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경외하며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실수나 실패를 더 많이 줄이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오는 참된 지혜를 자꾸 소유하게 되기 때문이죠.
만약 우리가 인생을 결정지는 중요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 되도록 빨리 가기 위해 자주 시간을 확인하고, 좀더 빠른 경로를 탐색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곳에 좀 더 빨리, 정확하게 도달하게 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발의 등이요 빛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람들을 아예 의식하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의 판단이나 평가에는 신경을 쓰지 않게 자신을 훈련하십시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사는 것이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이지, 그들이 내 인생을 살아줄 것이 아닙니다. 연세드신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연연하다 아까운 세월을 다 보내고,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고 탄식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안에서 살되, 그분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되, 진리안에서 자유하십시오. 하나님을 창조주로 삼고, 그분의 말씀에 기준을 두고 산다면, 신념으로 사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되고 가치있는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3)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새번역에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자꾸 멀리하십시오.

그리하면 이 말씀이 몸의 보약이 되며, 상처가 낫고, 아픔이 사라지리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념이 아닌 신앙으로 살아내는 일에 승리하시길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보호하시고 은혜주시는 성령님 오늘 우리 속마음을 당신께서 다 아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삶의 문제에 집중하지 않겠습니다. 주시는 말씀과 인도하심을 더욱 묵상하며 우리의 자리를 잘 지키려고 합니다. 성령하나님 오셔서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의 지혜와 명철함과 판단력을 주옵소서. 우리 신념이 아니라 신앙으로 살도록 오늘도 이끌어 주시옵서.

https://www.youtube.com/watch?v=AYRR9XrbmHU

 

(찬 407)

 

살아볼수록 인생은 허무하죠. 과연 인생의 허무는 극복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살면 의미있는 인생이 살아질까요?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로서 하나님을 경외를 실천하라고 말합니다. 그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많은 성도들이 그저 예배당에 열심히 나가거나, 헌금을 빠지지 않고 드리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예물을 드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외적인 형식도 중요하지만 내적인 내용도 중요합니다. 어떤 분은 예물이나 형식은 중요하지 않고 내용만 중요하다고 가르치는데 성경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일까요?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삶에 꼭 필요한 요소를 찾으며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본문 (1~3)을 해석하며, 그 말씀속에 들어있는 뜻을 풀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를 새번역으로 읽으면 하나님의 집으로 갈 때에, 발걸음을 조심하여라.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제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 알지만, 그보다는 말씀을 들으러 갈 일이다

이 말씀은 성전에 나아가면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행동을 신중히 살피며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배드리는 자의 마땅한 자세이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에 보면 예배자가 갖추어야 할 바른 자세를 무시하고 부정하고 잘못된 행실을 하면서도 성전에 나아가 예배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할 시기에 극에 달했는데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성회와 더불어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1:13)”고 말씀하셨고,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자의 자세는 어떠한 것일까요? (116,17)에 보면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솔로몬 시대나, 이사야 시대에만 국한된 말씀이 아니지요. 오히려 예수님을 통해 새롭게 거듭난 성도들이 말씀을 지키는 일에 더 둔감하고,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진리안에서 자유다, 하나님의 은혜로 덮으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죄를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잘못하면 즉시 치셨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은혜시대에는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오래참고 기다리시기에 더 죄를 가벼히 여기고, 더 만홀히 여깁니다. 따라서 성도인 우리는 참된 경외와 경건의 자세로 주님께 나가야 합니다.

 

(243,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일까요?

본문 (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3)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여기 함부로, 급한 마음으로 하는 말은 천박하고 경박한 말들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앞에두고 하는 말도 천박하거나 경박하면 모독이 되는데, 성도인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하면서도 기분에 따라 함부로, 급한 마음으로 말하면 그 자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는 죄요, 입술로 범죄하는 악입니다.

사실 말이 많으면 허물은 점점 늘어나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실수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말을 많이 해도 허물이 되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하나님을 향한 기도입니다. 물론 기도랍시고 아무 말이나 막 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께 모든 것을 묻고, 의뢰하며, 인도하심을 구하길 원하시는 분입니다.

사람에게 말을 많이하는 것보다, 자주 하나님께 묻고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많이 드리십시오.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기도는 보배로운 향기와 같습니다.

(58)에 보세요.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냄새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했습니다.

(8)에 보면 천사가 많은 향을 받아 성도들의 기도들과 함께 보좌 앞 금단에 드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우리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시는 분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오늘 본문 (1~3)을 묵상해 볼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외형적으로도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리고 내면적인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며 섬기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로 경외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구체적으로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기분에 따라 함부러 말하고,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뱉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왜요? 그것은 사람이 자기 입술의 열매를 먹기 때문이죠. 그래서 성도는 실수가 많은 말을 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드리는 말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더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기도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아름다운 향기가 되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향기로운 제물로 드리는 말의 제사를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니 사람과의 말을 되도록 줄이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묻고,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의 향연을 더 많이 드려보십시오. 그리고 기도하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 말은 얼마나 사람을 위로하고 살리는 말이 되겠습니까?

오늘 실수가 많은 말을 많이 하기보다,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께 뜻을 묻고,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더 많이 하는 신령한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저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외적 경건을 기본으로 두고, 내적 경건함이 더해지는 성숙한 성도가 되게 해 주십시오. 따라서 감정이나 기분으로 말하기 보다 믿음으로 말하고, 또 기도로 하나님께 말하는 향기로운 향기의 제사를 드릴 줄 아는 지혜로운 성도로 살게 해 주십시오. 오늘도 성령님, 할 말을 우리 생각과 입에 담아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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