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Wheat Field (detail), Vincent Van Gogh.

 

(찬 430장)


대부분의 동화나 드라마는 권선징악(勸善懲惡, Poetic Justice)으로 끝을 맺습니다.
선한 사람들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들은 결국 악의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를 우리가 많이 경험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죠. 전도자는 왕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라고 가르쳤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악인이 잘 사는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호한 세상에서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앞세우지 말고 왕의 권위를 인정하고 왕의 명령을 따르는 신하가 지혜로운 신하이듯 전도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속한 영역을 침범하지 말고 사람에게 주어진 영역에 집중하며 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삶의 모호함속에서 살아내기’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를 이야기하면서 악한 왕이 등장하거나 나라의 관리가 백성을 수탈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악행은 시간이 지나서라도 단죄가 이루어져야 할 텐데 실제로는 사람들이 모두 그 악행을 잊어버리고 하나님도 그런 악행을 즉시 징벌하지 않으셔서 악한 자들이 거리낌 없이 악행을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이 악인들에게 왜 이렇게 하시는지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물론 궁극적인 심판인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의 때 각 사람에게 합당한 심판이 실행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때 악인이 징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이어서 (12~14)까지는 하나님이 선과 악을 심판하시리라는 것을 전도자가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자는 분명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되고 악인은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다.
즉 살아있다 하더라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진리지요.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 진리가 실현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의인이 징벌을 받기도 하고 악인이 상을 받는 일마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이것을 보고 헛되다 탄식하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왕과 의견이 다른 신하가 왕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선택해야 한다고 (2절)에서 가르쳤던 것처럼 전도자는 자신은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15~17)에서는 사람에게 허락된 영역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데요.
전도자는 이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며 생애 가운데 수고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결론을 또다시 반복합니다. (2장 24절, 3장 13절, 5장 18절, 9장 7절)에서 반복되는 것인데 여기서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시는지 알기 위해서 밤낮으로 잠을 안 자며 연구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능히 알아낼 수 없다고 세 번 반복하면서 이 단락을 결론 짓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장 큐티 가족 여러분, 선한 사람이 고통받고 악한 사람이 형통한 이 모순된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사람들은 지혜를 많은 것을 아는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참된 지혜는요 사람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시간과 고유 영역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는 영역을 알려고 하기보다 사람에게 허락된 영역에서 삶을 행복하게 누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원하는 것이다라고 전도자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15)에서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이 말씀은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정말 복잡한 세상사에 신경 쓰지 말고 그저 즐기라는 말일까요? 악인들이 번성하는 세상에 질끈 눈을 감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 자기 쾌락에만 몰두하며 살라는 말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싸움에 지친 인생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쓴 것입니다.
악인들이 번성한다고 해서 ’너무 지나치게 화를 내지 말라!‘ 조급증에 사로잡히면 스스로 마음의 평정을 잃고 비틀거리게 되고 급기야는 자기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싸우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잘 돌봐야 된다는 것이죠.
지금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삶의 나날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지금 먹고 마시고 즐겁게 사는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자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일까요?
하나님의 선물에 기뻐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모호하기 이를 데 없지요.
악인들이 벌을 받고 선인들이 복을 받아야 한다는 우리의 상식은 자꾸만 무너집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허무주의에 빠질 수도 있는데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에 집중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인생은 모호하게 이를 데 없지만 전도사의 기자는 그 모호한 생에 사로잡혀서 울퉁불퉁 거리지 말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지금을 한껏 살아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울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주저없이 행복을 누리라는 것이죠.
영원의 빛 가운데서 지금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 우리 인생 전체가 보이는 법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은총 속에서 오늘 또 기뻐하면서 감사하면서 이 모호한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가 다 알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왜 악인이 형통한지 의인이 고통을 당하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것을 알고 오늘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너무 깊이 고민하며 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믿고 오늘 우리가 살아내야 될 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안에서 삶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행복한 성도로 살게 해주십시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gFRYfLF3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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