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191장)

아침이 밝았습니다. 지난 밤에 온통 깜깜하게 덮었던 어둠은 소리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성령이 오면 악령은 떠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사울에게 성령이 떠나자 악령이 엄습했고, 성령으로 충만한 다윗이 오자 사울에게 악령이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외적으로는 여전히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의 보좌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이스라엘에서 왕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은 사울이 아니라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떠났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저지르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사울에게 악령의 지배가 강해지면서 피해망상증, 극도의 불안증과 정신분열 증세까지 나타났습니다.

(10)에서 사울에게 성령이 임하자 예언도 하고, 전쟁에서 승리했지요. 지금 그 모습과는 완전히 대조적입니다.

사울에게 악령이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떠났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증상은 사울이 더이상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는 객관적인 증거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사울을 괴롭히는 악령을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령’이라고 표현한 것은 지금 사울에게 나타난 정신적 불안증상들이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렘브란트, '사울과 다윗'.

악령의 괴롭힘으로 발작이 일어난 사울왕에게 신하들이 다윗을 치유자로 추천했고, 다윗이 사울 왕 앞에서 수금을 연주할 대 사울의 증세는 호전되었습니다.
(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니라
그것은 사무엘에게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때부터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택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자 기록되었을까요? 본문을 우리 삶에 적용하면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바른 적용일까요?

첫째,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악령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자 악신이 그를 번뇌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울왕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그러자 악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에게 악령의 지배가 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다고 해서 자신이 주인이 될 수 없고, 자신의 삶과 영혼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자신이 주인이 되는 줄로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면 하나님의 신이 떠나가고, 악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우리 몸과 삶이 망가지고 허송세월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영역에 거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맡기며 따른다면 성령님께서 안내자가 되셔서 가장 복된 길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두번째 교훈은 성령님께서 성도의 마음안에 내주하심인데, 이것은 성도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입니다.
구약시대 성령님은 모든 백성들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작은 사람들에게 임재했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 여호수아, 사사들, 선지자들, 소수의 왕들에게만 성령님이 임재했습니다. 구약시대 성령님은 대게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 일을 잘 수행하도록 임재하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할 때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거두셨습니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에서 성령님은 마치 ‘입는 옷’처럼 임재하셨습니다. 순종하면 강력하게 임하여 역사하시고, 불순종하면 떠나기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약시대 성령님은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성령님은 다릅니다. 구약시대 성령님인 철저히 하나님의 사역과 연관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임한 성령님은 성도의 구원의 보증으로 임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엡 4장 30절)의 말씀처럼 성령님은 일단 임재하고 나면 구원의 날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는 분입니다.

신약시대 성령님은 성도의 구원의 보증으로 임하신 것이요, 한번 임하신 성령임은 성도를 영원히 떠나지 않으습니다.

그럼 성도가 만일 불순종하고, 의도적으로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다면 어떻게 하실까요?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도인 우리가 실수하고 죄짓고 살면 성령님이 떠나가지 않으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하며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성령님의 영원한 내주하심은 성도가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복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임재를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당연하게 여기면 감사가 없지만 당연하지 않게 여기면 감사가 나옵니다.

성령님께 감사하십시오. 성령님이 감동하여 죄를 생각나게 하실 때는 진심으로 회개하세요. 아울러 성령님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요 16장 13절)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롬 8장 13,14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오늘 성령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성령님을  탄식하게 하는 자가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행복하고 최고로 복된 삶을 사시길 축원드립니다. 

 



(
455)

‘루키즘(Lookism)’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루키즘은 외모가 개인 간의 우열과 성패를 가름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현상을 설명한 용어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로 외모 지상주의를 일컫는 용어인데요. 요즘 이런 현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알바몬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모로 인해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라고 하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62%가 그렇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현대인들에게 외모는 중요한데요. 사람들은 볼 때 외모나 외적인 조건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외모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 속 사람을 보시는 분입니다.

외모가 참으로 출중했던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신 하나님은 새로운 왕을 세우십니다.
새로운 왕이 세워지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미 사울을 버렸으니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고 하시고 새로운 왕을 세우기 위해서 베들레헴 사람 이세에게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당시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에 불과했어요.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지만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쉬지 않고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도요 이 시대의 악함과 교회의 세락으로 인해서 안타까워하는 것만 아니라 이 땅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하고 멈추지 말고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2~3절)에 보면 사무엘이 사울 때문에 망설이자 하나님은 암송아지 하나를 끌고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의 뜻에 순종하려 하는 사람에게 사명만을 맡기시는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 나아갈 길을 열어주시고 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걷고 있다면 결코 두려워하지 마세요. 두려워하는 사무엘에게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이 우리 앞길도 열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4~5절)에 보면 사무엘은 불안해하는 베들레헴 성읍 장로들에게 평강을 위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러 왔다고 안심을 시켰고 이세와 그 아들들을 제사에 초청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의심하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이세의 아들들을 성읍 장로들이 있는 자리에서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명을 맡은 자에게 세심하게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사무엘은 이세의 장자 엘리압을 보고 왕으로 적합한 인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겉모습을 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엘리아의 용모와 키는 신체적 요소 뿐만 아니라 기질이나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뭐죠? 사람의 중심입니다.
이것은 영적 태도와 신실한 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마음 중심을 항상 하나님 앞에 고정하십시오 그것이 성도가 잘 되고 복받고 형통한 비결입니다.

 

이세의 일곱 아들이 모두 사무일 앞을 지나갔는데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7절) 말씀을 보세요.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 일곱 명의 아들을 다 이미 달아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버렸다는 거죠. 하나님은 사울을 테스트하셨듯이 이미 이 세 아들들도 달아보시고 테스트하셨던 것입니다.
아마 이들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달아본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달아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라고 명령하심으로 달아보셨고, 요셉을 보디발의 아내에게 붙여서 과연 타락하는 사람인지 다뤄보셨습니다. 에서를 야곱의 팥죽에 위해서 달아보셨고, 롯을 에덴 동편으로 인도하셔서 달아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달아보시는 분입니다.

사무엘상을 시작하면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사무엘을 출산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이 (2장)에 나옵니다.
(3절)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이렇게 한나가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사람의 행동을 달아보시고 그 마음의 중심을 살피시는 분입니다.
이세의 일곱 아들이 모두 지나갔는데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자는 없었습니다.
사무엘이 또 다른 아들이 없느냐고 묻자 이세가 막내가 있다고 대답했지요.
‘막내’는 ‘말째’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가장 작은 자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이 표현은 ‘큰 자’라는 뜻의 사울과 대조를 이루며 다윗이 장차 하나님 마음에 합한 겸손한 자로 쓰임받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큰 자’가 되어야 하나님께 쓰임받는다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약함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겸손한 자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양치는 데서 데려왔는데요. 다윗은 그 첫 인상이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다고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외모가 아름다워서 다윗이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것은 아니지요. 이 표현은 용모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신 그의 내적 자질이 외모로 투영된 모습을 묘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내면의 아름다움을 소유한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과 성품으로 외적인 모습마저 아름답게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사멜에 의해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어요.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는 표현은 사울에게도 일어났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기름 부음을 받고 여호와의 영에 감동되는 것은 다윗이나 사울이나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사울은 버림을 받고 다윗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가장 위대한 선왕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이미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성령을 이미 받았지만 성령을 거부하고 역행한다면 성령의 열매는 커녕 우리의 형편이나 상황이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의 감동과 감화하심에 따라 순종하십시오 그렇게 살면 우리 개인에게는 성령의 열매들이 맺혀지게 될 거고요 또한 우리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빛을 보여주는 증거자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의 감동과 감마하심을 따라서 열매를 맺는 삶을 살려면 중요한 것이 뭐죠?

 

"사람은 외모를 보고 이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오늘도 중심을 하나님 앞에 굳건하게 세우고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말고 오늘 세상 속에 살지만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살아가세요.
그리하면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통하여 일하실 것이며 사람을 붙여주실 것이며 환경을 열어 환경을 열어주실 것이며 우리에게 지혜와 명철을 통해서 올바르고 복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선택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살기 원하는 여러분과 저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IWXNInpzDc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세상 가운데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 주시고 다윗에게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었던 것처럼 저희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내주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오늘 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기 원하오니 성령님 우리가 마음의 중심을 지키게 하시고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셔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시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능히 수행하고 이루어갈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중심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우리 중심을 받으시고 주님의 귀하신 뜻대로 인도하여 주시고 활용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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