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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즘(Lookism)’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루키즘은 외모가 개인 간의 우열과 성패를 가름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현상을 설명한 용어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로 외모 지상주의를 일컫는 용어인데요. 요즘 이런 현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알바몬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모로 인해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라고 하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62%가 그렇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현대인들에게 외모는 중요한데요. 사람들은 볼 때 외모나 외적인 조건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외모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 속 사람을 보시는 분입니다.

외모가 참으로 출중했던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신 하나님은 새로운 왕을 세우십니다.
새로운 왕이 세워지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미 사울을 버렸으니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고 하시고 새로운 왕을 세우기 위해서 베들레헴 사람 이세에게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당시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에 불과했어요.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지만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쉬지 않고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도요 이 시대의 악함과 교회의 세락으로 인해서 안타까워하는 것만 아니라 이 땅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하고 멈추지 말고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2~3절)에 보면 사무엘이 사울 때문에 망설이자 하나님은 암송아지 하나를 끌고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의 뜻에 순종하려 하는 사람에게 사명만을 맡기시는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 나아갈 길을 열어주시고 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걷고 있다면 결코 두려워하지 마세요. 두려워하는 사무엘에게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이 우리 앞길도 열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4~5절)에 보면 사무엘은 불안해하는 베들레헴 성읍 장로들에게 평강을 위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러 왔다고 안심을 시켰고 이세와 그 아들들을 제사에 초청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의심하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이세의 아들들을 성읍 장로들이 있는 자리에서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명을 맡은 자에게 세심하게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사무엘은 이세의 장자 엘리압을 보고 왕으로 적합한 인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겉모습을 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엘리아의 용모와 키는 신체적 요소 뿐만 아니라 기질이나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뭐죠? 사람의 중심입니다.
이것은 영적 태도와 신실한 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마음 중심을 항상 하나님 앞에 고정하십시오 그것이 성도가 잘 되고 복받고 형통한 비결입니다.

 

이세의 일곱 아들이 모두 사무일 앞을 지나갔는데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7절) 말씀을 보세요.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 일곱 명의 아들을 다 이미 달아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버렸다는 거죠. 하나님은 사울을 테스트하셨듯이 이미 이 세 아들들도 달아보시고 테스트하셨던 것입니다.
아마 이들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달아본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달아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라고 명령하심으로 달아보셨고, 요셉을 보디발의 아내에게 붙여서 과연 타락하는 사람인지 다뤄보셨습니다. 에서를 야곱의 팥죽에 위해서 달아보셨고, 롯을 에덴 동편으로 인도하셔서 달아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달아보시는 분입니다.

사무엘상을 시작하면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사무엘을 출산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이 (2장)에 나옵니다.
(3절)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이렇게 한나가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사람의 행동을 달아보시고 그 마음의 중심을 살피시는 분입니다.
이세의 일곱 아들이 모두 지나갔는데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자는 없었습니다.
사무엘이 또 다른 아들이 없느냐고 묻자 이세가 막내가 있다고 대답했지요.
‘막내’는 ‘말째’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가장 작은 자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이 표현은 ‘큰 자’라는 뜻의 사울과 대조를 이루며 다윗이 장차 하나님 마음에 합한 겸손한 자로 쓰임받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큰 자’가 되어야 하나님께 쓰임받는다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약함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겸손한 자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양치는 데서 데려왔는데요. 다윗은 그 첫 인상이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다고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외모가 아름다워서 다윗이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것은 아니지요. 이 표현은 용모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신 그의 내적 자질이 외모로 투영된 모습을 묘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내면의 아름다움을 소유한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과 성품으로 외적인 모습마저 아름답게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사멜에 의해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어요.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는 표현은 사울에게도 일어났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기름 부음을 받고 여호와의 영에 감동되는 것은 다윗이나 사울이나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사울은 버림을 받고 다윗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가장 위대한 선왕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이미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성령을 이미 받았지만 성령을 거부하고 역행한다면 성령의 열매는 커녕 우리의 형편이나 상황이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의 감동과 감화하심에 따라 순종하십시오 그렇게 살면 우리 개인에게는 성령의 열매들이 맺혀지게 될 거고요 또한 우리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빛을 보여주는 증거자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의 감동과 감마하심을 따라서 열매를 맺는 삶을 살려면 중요한 것이 뭐죠?

 

"사람은 외모를 보고 이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오늘도 중심을 하나님 앞에 굳건하게 세우고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말고 오늘 세상 속에 살지만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살아가세요.
그리하면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통하여 일하실 것이며 사람을 붙여주실 것이며 환경을 열어 환경을 열어주실 것이며 우리에게 지혜와 명철을 통해서 올바르고 복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선택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살기 원하는 여러분과 저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IWXNInpzDc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세상 가운데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 주시고 다윗에게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었던 것처럼 저희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내주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오늘 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기 원하오니 성령님 우리가 마음의 중심을 지키게 하시고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셔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시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능히 수행하고 이루어갈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중심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우리 중심을 받으시고 주님의 귀하신 뜻대로 인도하여 주시고 활용하여 주시옵소서.

 



(찬 365장)

인생을 살다 보면 절망적인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사울 역시 그러한 순간에 맞닥뜨렸습니다. 그가 맞서야 될 블레셋 군대는 너무나 강력했고 이스라엘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울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불순종을 선택함으로써 믿음을 지키는 데 실패하게 되는데요.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울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다스린 지 2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블레셋 위협에 대응해서 군대를 소집했는데 소집된 군사의 수가 보잘 것 없었습니다.
블레셋의 대규모 군대에 맞서 싸우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사울이 공식적으로 왕이 된 후 첫 번째 전투라고 할 수 있는 이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패전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1~7절)까지 내용을 보면 사울은 상비군을 3천 명 두었는데 그중에 2천 명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고 나머지 천 명은 아들 요나단과 함께 보냅니다. 요나단이 군대를 데리고 블레셋의 수비대를 기습 공격하자 블레셋이 반격을 준비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사울이 주둔하던 길갈에 모여 싸움을 준비했는데 수적으로 열쇠가 너무 극심했습니다.
5절에 보면 블레셋의 군대 규모를 볼 수 있는데요. “병거가 3만(전차가 3만대), 마병이 6천(말을 타는 기병이 6천), 백성은 해변에 모래같이 많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엄청난 대규모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치러 온 것입니다.
싸우기 위해 모인 백성은 블레의 군대 위용을 보고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굴과 수풀 바위틈과 웅덩이에 숨어버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요단강을 건너 동쪽으로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은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길갈 진영에 남았습니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이야말로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하나님이 이루실 큰 일을 목도할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단 말입니다.

(8~9절)까지는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사무엘이 길갈로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당도할 때까지 이레를 기다리라고 했고 사울은 그의 말을 따라 급박한 가운데서도 이레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의 도착이 지체되자 백성은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더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칭 제사장이 되어 번제를 번재를 드리고 맙니다. 이 상황만 보면 사울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 처한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마저 드는 대목입니다.

그런 위기의 순간이야말로 믿음의 진가가 드러나는 때입니다.
사울은 그 모든 상황에서 순종보다는 융통성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패하면 패하리라 또는 죽으면 죽으리라 이런 믿음의 결단과 순종이 필요한 때인 것을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10~11절) 섣부른 변명을 하는 사울왕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극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요. 오늘 공교롭게도 사울이 번제를 바친 바로 그때 사무엘이 도착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제사를 드린 것을 보고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왜 그랬는지를 해명하게 되는데요. 백성은 겁을 먹고 흩어지고 사무엘은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고 블레셋의 공격은 임박해 오는 상황이었기에 부득이하게 번죄를 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지금 상황 윤리를 적용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상황 윤리(Situation Ethics)란 무엇일까요?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각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제사장이 와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맞지만 이렇게 급박한 상황 속에서는 신속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다는 것이 사울의 상황 논리였던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U3RBHWXVKg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진리는 그렇게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상황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융통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는 순종의 백성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복이 와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가 와요.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의 역사가 펼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하나님이 하실 일을 끝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의 판단력을 의지하고

융통성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도우시리라는 그릇된 믿음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장 큐티 가족 여러분 위기의 순간에 가장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는 길을 여쭙고 믿음으로 그 길을 선택하시는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는 상황 윤리가 아니라 주님의 절대적 진리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상황에도 적용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융통성은 순종이 아닙니다.

융통성을 하나님 말씀 앞에 발휘하지 않게 하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순종하며 주님께서 나아가실 때 우리의 길을 여시고 복된 삶을 펼쳐줄 것을 믿습니다.
오늘 또 융통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모든 축복과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감동을 주시고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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