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449장)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 그러므로 말씀은 곧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본문은 이러한 행위를 망령되다라고 일컫고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 앞에 망령대 행하지 말고 말씀대로 따라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본문을 보면 사무엘은 자신을 기다리지 않고 번제를 드린 사울에게 망령되이 행했다며 책망했습니다.
사울은 막강한 블렛의 군대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두려웠습니다.
그는 전쟁의 승패가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해서 사람을 주목했고요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던 겁니다.
(잠언 29장 25절)에 보면 지혜자는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종국에는 승리와 생명과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사무엘은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새롭게 세워질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지도자는 능력이 탁월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왕이 아니라 부족해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무엘이 떠나간 후에 사울은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을 계수했는데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스스로 번제를 드렸지만 이제 남은 백성은 600명뿐이었습니다. 사울이 남은 백성을 개소한 것은 새로운 전술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여전히 자신의 지식을 동원해 위기를 극복하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에서 만나는 위기 앞에서 나의 지식이나 경험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이야말로 개인과 가정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지식임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19~21절)에 보면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에는 철공이 없어서 쇠로된 도구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 의뢰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블레셋 사람들이 철공 기술을 독점하면서 이스라엘에 그 기술이 전수되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무엘상 기자는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는 블렛의 사람들의 말을 언급하면서 철공 기술 전술을 철저히 차단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블레셋은 무기와 관련 없는 농기구만 수리해 주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의 땅에 농기구를 벼리러 자유롭게 드나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은 지금 군사적 대치 상황에 있는 본문과는 달리 불레셋과 이스라엘이 서로 평화롭게 왕래하던 시기가 상당 기간 있었음을 추측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철저히 예속되어 있으면서도 그들과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다는 것은 바로 그들과 타협하고 공존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블레셋과 타협하고 공존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신앙보다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큰 위기로 지금 닥쳐온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결국에는 타협과 공존이 큰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질서에 동화되거나 타협하며 지배받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무기에도 절대적으로 열세였고요 블레셋 군대는 창이나 칼 같은 철제 무기로 무장했지만 이스라엘 군대는 사울과 요나단에게만 철제 무기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워 이길 승산이 전혀 없었음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친히 싸워주셔서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위기의 때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힘과 능력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세요.
자기가 연약하고 상황이 좋지 않다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마세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도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요. 믿음으로 나아갈 때 모든 것을 아름답고 복되게 바꿔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위기는 절대 위기가 되지 못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DXhIElTluU

 

 말씀의 결론입니다.

 위기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때에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상황을 통제하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 지혜를 쏟으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바로 이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기다리며 나아간다면 우리 생활은 기쁠 것이고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이며 우리의 모든 삶은 위기 앞에서 기회로 찾아올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모든 위기를 역전시키시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이 나타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위기가 있습니다. 위태롭고 위험하고 두렵고 걱정되는 그런 상황과 현실이 있습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온전히 신뢰하고 나아갈 때에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주십시오 위기를 극복하게 하시고 위기를 잘 지혜롭게 풀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내가 들어야 될 주님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오늘 내가 깨닫고 순종하며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될 주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가르쳐 주시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그 일을 시작하게 하시옵소서.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고 하셨사오니 그 말에 순종하겠습습니다. 인도하여 주옵소서.

 



(찬 365장)

인생을 살다 보면 절망적인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사울 역시 그러한 순간에 맞닥뜨렸습니다. 그가 맞서야 될 블레셋 군대는 너무나 강력했고 이스라엘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울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불순종을 선택함으로써 믿음을 지키는 데 실패하게 되는데요.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울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다스린 지 2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블레셋 위협에 대응해서 군대를 소집했는데 소집된 군사의 수가 보잘 것 없었습니다.
블레셋의 대규모 군대에 맞서 싸우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사울이 공식적으로 왕이 된 후 첫 번째 전투라고 할 수 있는 이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패전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1~7절)까지 내용을 보면 사울은 상비군을 3천 명 두었는데 그중에 2천 명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고 나머지 천 명은 아들 요나단과 함께 보냅니다. 요나단이 군대를 데리고 블레셋의 수비대를 기습 공격하자 블레셋이 반격을 준비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사울이 주둔하던 길갈에 모여 싸움을 준비했는데 수적으로 열쇠가 너무 극심했습니다.
5절에 보면 블레셋의 군대 규모를 볼 수 있는데요. “병거가 3만(전차가 3만대), 마병이 6천(말을 타는 기병이 6천), 백성은 해변에 모래같이 많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엄청난 대규모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치러 온 것입니다.
싸우기 위해 모인 백성은 블레의 군대 위용을 보고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굴과 수풀 바위틈과 웅덩이에 숨어버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요단강을 건너 동쪽으로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은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길갈 진영에 남았습니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이야말로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하나님이 이루실 큰 일을 목도할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단 말입니다.

(8~9절)까지는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사무엘이 길갈로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당도할 때까지 이레를 기다리라고 했고 사울은 그의 말을 따라 급박한 가운데서도 이레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의 도착이 지체되자 백성은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더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칭 제사장이 되어 번제를 번재를 드리고 맙니다. 이 상황만 보면 사울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 처한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마저 드는 대목입니다.

그런 위기의 순간이야말로 믿음의 진가가 드러나는 때입니다.
사울은 그 모든 상황에서 순종보다는 융통성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패하면 패하리라 또는 죽으면 죽으리라 이런 믿음의 결단과 순종이 필요한 때인 것을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10~11절) 섣부른 변명을 하는 사울왕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극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요. 오늘 공교롭게도 사울이 번제를 바친 바로 그때 사무엘이 도착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제사를 드린 것을 보고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왜 그랬는지를 해명하게 되는데요. 백성은 겁을 먹고 흩어지고 사무엘은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고 블레셋의 공격은 임박해 오는 상황이었기에 부득이하게 번죄를 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지금 상황 윤리를 적용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상황 윤리(Situation Ethics)란 무엇일까요?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각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제사장이 와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맞지만 이렇게 급박한 상황 속에서는 신속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다는 것이 사울의 상황 논리였던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U3RBHWXVKg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진리는 그렇게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상황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융통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는 순종의 백성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복이 와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가 와요.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의 역사가 펼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하나님이 하실 일을 끝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의 판단력을 의지하고

융통성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도우시리라는 그릇된 믿음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장 큐티 가족 여러분 위기의 순간에 가장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는 길을 여쭙고 믿음으로 그 길을 선택하시는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는 상황 윤리가 아니라 주님의 절대적 진리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상황에도 적용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융통성은 순종이 아닙니다.

융통성을 하나님 말씀 앞에 발휘하지 않게 하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순종하며 주님께서 나아가실 때 우리의 길을 여시고 복된 삶을 펼쳐줄 것을 믿습니다.
오늘 또 융통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모든 축복과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감동을 주시고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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