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무엇을 따를 것이냐 이것은 우리 삶에 늘 주어지는 숙제와 같은 것이지요.
엔게디 광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윗은 사울에게 자신이 그를 죽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다윗이 사울에게 하는 말은 사울이 왜 왕자에서 쫓겨났는지를 드러냅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의식했고 사람의 말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어제 말씀에서 다윗은 아비새와 함께 사울의 진영에 들어가서 사울을 죽이지 않고, 사울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왔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오늘 (13~16절) 말씀에서는 다윗은 사울의 진영과 거리를 확보한 이후에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아브넬은 다윗이 자기를 부르고 있음에도 왕을 부른다고 착각했고 또 그가 다윗인지도 알아채지도 못했습니다.

군대 장관으로서 아브넬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는 장면입니다. 다윗도 아브넬이 사울을 수행하는 군대 장관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분명 아브넬은 용사입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그만한 능력을 갖춘 자가 없다고 할 만한 자였습니다(15절)
그런데 그가 모시는 왕 사울을 지키는 데는 실패한 것입니다. 이는 죽음으로서 책임을 져야 마땅한 큰 잘못이라고 다윗이 말했는데요.
사무엘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가장 강한 용사였던 아브넬이라고 해도 사울을 지킬 수 없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유능하고 강하다고 해도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그 생명을 유지하고 승승장구했지만 사람을 의지했던 사울은 결국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이것을 오늘 본문 말씀도 이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사울


(17~20절)까지 보면 아브넬과 달리 사울은 다윗의 목소리를 곧장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다윗을 ‘내 아들’이라고 부르고 다윗이 사울을 ‘내 주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엔게디 사건과 유사합니다.
다윗은 사울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 자기를 헤아려 하는 것이라면 자기가 죽어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져야 옳겠지만 이것이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이라면 그들이 저주를 받아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사울은 십 사람들의 말을 듣고 다윗을 찾아 나선 것이므로 다윗이 지적한 대로 사울왕은 사람의 말을 따라 움직인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사람들의 말을 따라 무가치한 일을 하고 있다며 자기를 죽이려는 시도를 그만두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사람의 말을 듣고 다윗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자기의 죽음을 재촉하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고려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패망의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21~25절)까지 보면 사울은 자기가 잘못했다고 고백하고 다윗에게 돌아오라고 다시는 그 생명을 해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말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의 말은 믿을 수도 없고 또 그가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창을 돌려주면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생명을 다윗의 처분 아래 두셨습니다. 아무리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이 다윗 편에 서 계시기에 다윗은 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사울의 생명을 중히 여겼듯 하나님도 자기 생명을 중히 여겨주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자기 생명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긴다는 고백입니다.
그게 (24절)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란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했던 다윗은 그를 죽이려 했던 사울에게 축복을 받으며 떠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야말로 참된 안전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EWq47o1-mI
 말씀의 결론입니다.

사람의 말을 들으면 사람의 종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종입니다.
사울은 다윗의 몇 배나 많은 군사를 거느렸고 현직 이스라엘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의 힘과 평판을 의지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했던 다윗은 어떻습니까? 사울왕이 결코 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오늘 또 내가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될 그 뜻은 무엇인지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늘 또 우리가 하나님 안에 살면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또 쉬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은혜를 구하며 사는 삶입니다. 이 귀한 삶에 승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드립니다.

살아계신 우리 주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사람을 따르는 사울왕이 어떻게 멸망해 가는지를 보았습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사람의 사람이 해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다시 한 번 보았습니다. 주님,저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시고 사람의 종으로 살지 않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만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사람을 용서할 줄 아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신분과 역할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오늘 또 기뻐합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도움과 은혜를 입으며 살겠습니다.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바라며 축복된 길로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며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찬 310장)

 

 누가 강한 사람일까요? 세상에서는 돈과 권력 있는 자가 강한 자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강한 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강한 자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엔게디 광야에서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손대지 않았는데 오늘 십 광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만 엔게디 광야에서는 다윗의 사울을 피해 숨어 있었지만 십 광야에서는 다윗이 사울의 진영으로 침투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5절) 말씀까지 보면 사울은 이미 엔게디에서 다윗에게 항복을 선언했지만 십 사람들이 십 광야 앞 하길라산에 다윗이 숨어 있다는 정보를 제공하자 3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출동했습니다. 광야를 샅샅이 다 뒤져서라도 다윗을 잡겠다는 생각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더 이상 이전처럼 숨어있지만은 않았고 오히려 정탐꾼을 보낼 뿐만 아니라 직접 사울의 진영에 침투해서 정탐까지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니는 도망자가 아니라 사울에게 맞서는 왕이 되었고 군대와 군대 나라와 나라로 싸울 수 있는 존재가 됐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울은 다윗의 영토인 십 광야로 다윗을 잡으러 왔는데 자기 군대가 다윗의 군대보다 규모만 클 뿐 사실상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김으로 이스라엘이 왕이 된 다윗은 이렇게 강력한 군대와 나라를 이끌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사울왕은 자기 자신과 자기 군대를 몰랐던 것입니다.

다윗의 도피 경로


 이어서 (6~8절)까지 보면 다윗은 직접 적진에 침투해서 정탐하는 용기를 보였습니다. 함께 하겠다고 나서는 아비새와 같은 용사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다윗의 군대의 용맹성입니다. 다윗의 군사는 약 600명 정도 되었는데요.
3천 명이나 되는 사울의 군대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다윗의 군대를 얕보아서 보초도 제대로 세우지 않은 채 잠들었습니다. 군대 장관 아브넬과 군사들 역시 전혀 경계 태세를 갖추지 않았습니다.
이에 아비새는 적진 중앙까지 들어가 창호로 사후를 땅에 꽂아 죽일 수 있다며 다윗에게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얼핏 보면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우를 죽일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길을 갔기 때문에 다윗은 이처럼 강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십 광야에서 다윗과 아비새


 왜 사울왕을 죽이지 않았을까요?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이는 것은 하나님께 범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이 사울을 쳐서 죽게 하실 권한이 있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거두시거나 전장에서 죽음을 당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동일한 상황에 대해서 사울을 죽여 원수 갚을 기회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를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시험대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비새에게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도록 명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박해를 당하는 당사자임에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해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상황을 인식한 것은 그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진 믿음의 사람인 증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라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 신앙인은 모든 상황 속에서 자신을 중심에 두는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의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는지를 상고하며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을 앞두시고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한다고 하신 기도에서도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강한 사람입니까? 성도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요 성도는 강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합시다 그럴 때 우리는 약한 자이지만 강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약할 때 강함이 되는 하나님의 원리를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세워진 과정에는 정치적인 모략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모두 다윗의 왕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그 뜻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성경 말씀을 인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를 높여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를 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의 뜻대로 귀하게 쓰임받는 강한 그리스도인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goFAz1UHRI

 기도드립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약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강한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철저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이로운 대로 해석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의 뜻에 자기 자신을 내어 맡겼습니다.
주님, 우리도 오늘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약하지만 강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우리가 약하지만 강한 믿음과 강한 생각과 강한 생각을 허락하여 주셔서 이길 수 없는 문제를 이기게 하시고 극복할 수 없는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지혜와 믿음과 용기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살아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은혜로 호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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