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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요나단은 부자간이면서도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신의 탐욕을 추구한 반면 요나단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다윗이라는 한 사람을 놓고 사울은 죽이려고 했고 요나단은 살리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가치관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24~31)에 보면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왕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요나단은 다윗에게 말한 계획대로 초하루 식사 때에 아버지 사울을 만나 그의 의중을 살폈습니다.
초하루 식사 첫날에 다윗이 자리를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다윗을 찾지 않았습니다. 어떤 부정한 일 때문에 식사에 참석하지 못했나 보다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 날도 다윗이 보이지 않자 요나단에게 다윗의 행방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요나단은 다윗이 집안의 제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베들레헴에 가길 원했고 자신이 그것을 허락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아들 요나단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과 저주를 퍼부으며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다윗이 살아있으면 사울 자신의 왕권뿐 아니라 아들 요나단의 왕위도 보장받는 것이 불가능하리라고 주장하며 다윗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뜻을 스스로 막아보겠다는 어리석은 시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뜻으로 막아지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그때부터는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알게 되었다면 그때부터는 회개해야 합니다.

 

 (32~34)은 다윗을 살리려는 요나단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요나단은 또 한 번 다윗을 적극적으로 변화합니다. 이번에는 울분과 격한 감정이 함께 쏟아져 나왔습니다.
도대체 다윗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죽어야 하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울은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졌습니다.

요나단은 크게 분노해 그 식사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그리고 아무 잘못 없이 미움을 받는 다윗을 위해 슬퍼합니다.
사울과 마찬가지로 요나단도 자기 집안의 왕위가 지속되지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이 사울을 대신해 왕이 될 것을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서 두 부자가 보인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바 생각하는 바가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했지만 요나단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울 대신 다윗을 선택하기로 결정합니다. 그의 여동생 미갈도 그와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지 않았고 하나님 뜻 앞에 스스로 겸비하여 그 뜻에 따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요나단의 이런 선택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관계로 따지면 사울은 그의 아버지지요, 이해관계로 따져도 다윗은 자신이 당연히 물려받아야 될 왕위를 대신 차지할 사람입니다. 인간적으로만 따진다면 요나단은 당연히 사울 편에 서야 맞습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길 원했고 육신의 아버지의 뜻이 아닌 하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요나단 같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돕고 구원하는 일을 기쁘게 감당합니다.
이러한 삶의 가장 큰 본을 보여주신 분이 누구이죠?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죄인들을 대신해 죽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가 예수님의 본을 따라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던지게 하셨습니다.

 

 독일 간호사인 엘리자베스 조안나 쉐핑은 191232세부터 54세에 소천하기까지 22년 동안 일제강점기에 신음하면서 의료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살피며 일생을 헌신했습니다. 그녀가 희생적 삶을 살았던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인 우리가 모두 당신의 뜻을 삶의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한다면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선하게 변화시켜 나아가실 것입니다.

 오늘은 박대영 저자의
디도여, 교회를 부탁하오라는 책의 내용의 일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고 한 번도 배워보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가까이에서 본 제 아버지처럼 될 자신이 없었습니다. 손봉호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신학을 하러 유학을 갔지만 신학을 바치고도 목사 안수는 받지 않았습니다.
내가 신학 공부를 하고도 안수를 받지 않은 것은 목회자의 책임이 너무 무서워서다 어릴 때 내가 만난 목사님들은 하나같이 그 무서운 책임을 존경스럽게 감당하셨는데 나는 도저히 그분들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지도자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더 엄중한 책임을 부여하고 더 큰 신뢰와 존경을 보이는 사회가 수준 높은 사회입니다. 특히 영적인 지도자의 자리는 참으로 그 책임이 더욱 무겁습니다. 목회자는 사람들의 삶의 의미 가치관, 행동 양식, 직업 선택, 자녀 교육, 심지어 영원한 미래에까지 결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 가르치고 그릇 인도하면 함께하는 영혼들을 파멸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경건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는 그가 책임졌던 신학교에서 두 부류의 학생에게는 입학을 허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너무 유능해서 모든 일에 성공하기 때문에 목회에도 성공하리라 자신하는 학생과 또 하나는 하나님이 자기를 목사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하는 모든 일마다 실패하게 하셨다고 믿는 지원자는 거부했습니다. 전자는 너무 교만해서 실패할 것이고 후자는 목회를 할 때도 실패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은 상당 부분 지도자들의 과오와 부덕에서 비롯됩니다.
지도자나 성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지도자들이 중심을 잘 잡고 있으면 성도들은 언젠가 제 자리로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이 저자의 말처럼 정말 지도자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사울은 본인이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탐욕과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끝끝내 고집을 피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요나단은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서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일에 적극적으로 순종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뜻 앞에서 어떤 결정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죽이려는 사울이 아니라 살리려는 요나단의 길로 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KEyg5-qv5I


 말씀의 결론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나단이 패륜을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습니다.그는 사울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상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아버지이자 왕의 권위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복잡한 이해관계 앞에서 단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 편에 설 것인가? 어느 길을 따를 것인가? 하는 고민이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럴 때 원칙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뭘까요? 성도는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하고 늘 정의롭고 거룩한 편에 속해 있으면 결국 그것이 가장 복되고 지혜로운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죽이려는 사울이 아니라 살리려는 요나단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살리려는 그 길을 기쁨으로 가십시오. 나를 통해서 누군가가 살아나고 나를 통해서 어떤 영혼이 구원을 받고 나를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인가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오늘 하루도 멋지게 출발할 수 있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죽이려는 사울과 살리려는 요나단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 죽이는 자가 아니라 살리는 자로 살게 해주십시오. 내가 살려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가 위로하고 세워주고 격려하며 경청하며 손잡아줘야 될 사람은 누구입니까? 주님 오늘 우리가 행하는 모든 길에서 우리 각자가 살려야 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감동을 주시고, 그래서 살리는 자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인도해서 별과 같이 빛날 수 있는 복된 성도로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찬 91장)

사람들은 성공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성장을 원하십니다. 성도들은 수직상승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지속성장을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선택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는 순간이 왔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사울을 왕으로 환영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반응은 우리가 살아갈 때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나름 정직하게 하는데도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 앞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오늘도 살아가야 할까요?

사무엘은 이스라엘 왕정 시대를 시작하는 첫 번째 왕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했습니다. 미스바는 창세기에서 야곱과 라반이 화친의 조약을 맺은 곳이며, 사사 시대에는 백성들의 총회가 열려 중대한 사항을 결정하거나, 집회를 통해 회개하였던 공적인 장소입니다.

오늘 나라의 중대사인 왕이 선출되는 것을 보기 위해 많은 백성이 모였습니다. 왕을 선출하기 전에 사사인 사무엘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압제하는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모든 나라의 손에서 구원하신 분이신데, 너희가 그 왕대신 하나님을 버리고 왕을 세워달라고 해서 오늘 이날을 맞이한 것이라고 확인했습니다.

다분히 인간적인 의도에서 왕이 선출되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죠.

드디어 왕을 선출하는 방식이 진행되었는데 그것은 제비뽑기였습니다. 결국, 12지파에서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에서 마드리 가족이 뽑혔고, 그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습니다.

그러나 정작 사울은 짐 보따리 사이에 숨어버려서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사울이 단상에 올라왔을 때는 온 백성이 왕의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습니다.

사울은 키가 훤칠하고, 출중한 외모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세우며 두 가지를 확실히 했습니다. 그가 뽑힌 이유는 첫째, 그는 여호와께서 선택하셨다. 둘째, 그는 모든 백성보다 출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울이 국가 방위와 통치에 적격자임을 공표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왕의 만세를 부르면서 사울은 이스라엘 왕으로 공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앞서서 언급했던 왕정 제도의 헌법을 백성들에게 공표하여 기록으로 남깁니다.

그런데 왕이 된 사울은 왕궁이 아닌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아직 이스라엘이 사사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본문 마지막에는 사울이 왕으로 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고 기록으로 남겼고, 사울은 그들의 저항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오늘 본문의 내용인데,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기 위해 기록되었을까요?
우리는 본문에서 무엇을 깨닫고 삶에 적용해야 할까요?
첫 번째 핵심은 이스라엘이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왕을 얻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그동안 왕이셨고, 앞으로도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여 따로 왕을 세우는 것이 뭡니까?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요, 패역입니다. 동기가 잘못된 것이죠.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마땅히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이요, 물질과 생활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내가 주인 되고, 물질이 주인 되고, 사람이나 우상이 주인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얼마든지 우리의 생활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나의 왕 되심을 인정하는 하루를 사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가장 복되고 완성된 하루를 살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핵심은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품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배은망덕한 백성도 품으셨고, 그들의 요청을 수락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요청대로 끌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의 욕구대로 사는 삶이란 얼마나 허망하고 헛된 것인가를 깨우치기 위함이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내 욕구와 욕망대로 선택할 때 하나님은 종종 그것을 허락하십니다. 왜죠? 그것을 통해 아픔을 겪겠지만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내가 아파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내 고통은 말씀의 순종에 온 것입니까? 인간적인 선택 때문에 온 고통입니까? 중요한 것은 아픔이 온 것이 아니라, 아픔을 통해 깨달아야 할 진리입니다. 오늘도 진리를 깨닫고, 복된 삶을 깨닫고, 아름다운 인생을 향하여 재조정하시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핵심은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선택하셨습니다. 창 49장의 예언에 의하면 유다 지파에서 왕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에서 뽑아 세우셨습니다. 이 선택은 하나님께서 미스한 것입니까? 아니죠. 중요한 것은 지금 하나님께서 사울을 뽑으셨다는 것이죠. 그를 왕으로 선택하셔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는 목적입니다.

그러면 사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다음 유다 지파에 왕을 세우실 때까지 자신의 역할을 잘 충성하고 지키면 되는 것이죠. 그러다 유다 지파에 왕을 세우시면 박수쳐주고 물러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안 되어 사울이 망쳐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를 정통 이스라엘 지파의 혈통에서 선택하지 않으셨고, 이방 민족의 혈통에서 뽑아 선택하여 당신의 백성으로 자녀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자, 은혜로운 결정이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괜히 유대인들을 시기하고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선택하여 부르신 그 모양, 그 위치, 그 역할을 잘 감당하면 되는 것이죠.

하나님을 믿는다고 누구나 큰 사람이 되고, 영웅이 되고, 큰 사업을 하고, 대중적으로도 성공하게 하지는 않으십니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부르심의 목적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 달란트를 맡길 수도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중요한 것은 몇 달란트를 맡겼느냐가 아니라, 그 맡은 것을 얼마나 충성되게 감당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그 선택에 감사하며,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잘 감당하면 그것이 승리요, 성공이자, 가장 멋진 일입니다.

오늘 남을 시기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에서 충성합시다. 우리와 같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하루를 살아갑시다. 하나님 외에는 우리 인생에 다른 것이 왕이 되지 못하게 합시다.

이것이 가장 인생을 잘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가장 잘사는 그리스도인의 인생이 펼쳐지길 바라며 축복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Dd5-KcN-vE&t=6s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사울 왕을 뽑아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저희도 선택하여 세상에서 뽑아내셨습니다. 사울에게 역할과 사명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같은 뜻이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누구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정해주신 경계 안에서 충성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감사하며, 행복을 느끼며, 즐겁게 살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성공을 위한 삶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작은 일에 충성하여 귀한 일에 쓰임 받는 주님의 백성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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