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516장)

사람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못하면 다른 왕을 찾게 됩니다. 자기가 왕이 되려는 경우도 있고, 물질이나 사람, 성공이나 부유함을 왕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참된 왕을 버리고 거짓 왕을 얻으려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행보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제 사무엘이 나이많아 늙었고, 어느날 이스라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사무엘이 늙었고, 두 아들은 아버지를 따르지 않고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는 불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85)에 보면 진짜 왕을 요구한 이유가 나오는데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모든 나라와 같이.‘ 자신들도 되고 싶다는 것이죠. 그들도 이방나라처럼 인간 왕을 세워, 통치를 받고 싶고, 전쟁에도 이기려면 왕이 직접 지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7)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을 물리친 후, 기념하여 에벤에셀이라는 기념돌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점점 불안해 졌을 것입니다. 안 보이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두가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은혜를 망각할 때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다.
이스라엘 장로와 백성들이 ‘인간 왕을 요구한 것은 국가 위기상황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친히 주변 나라들을 막아주셔서 평안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평화를 누리자,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점점 망각해 갔습니다. 자신들의 힘과 방어력으로 블레셋을 제압하고 있었다로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다 사무엘은 점점 늙어가고, 그 아들들은 패역하니 불안과 염려가 백성들에게 만연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평화를 누렸는데, 그 평화가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었고, 은혜를 망각하게 했던 것입니다.
(적) 사람들은 형통과 평안을 원하는데, 실제로 평안과 형통이 오면 불안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지키려고 인간적인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이죠.

 

많은 성도들이 문제가 해결된 평안한 상태를 원하는데, 놀이터의 시소가 한 쪽 올라가면 상대쪽이 내려가듯이, 평안과 형통이 오면, 그때는 영적으로는 침륜에 빠지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또 실제로 형통하고 평안하면 기도보다는 자기 생각이 더 많아지게 되죠.

 

(잠언 30)에 보면 아굴의 기도가 나옵니다.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7~9)

부하게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 이유는 혹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두렵기 때문인 것입니다. 잘되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은혜를 잊어버린다면 가난한 것이 훨씬 더 큰 복이요,
장수하고 죄를 많이 짓는 것보다, 경건하게 단명하는 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는 복된 것입니다.

 

둘째, 말씀에 방심할 때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이스라엘 장로와 백성이 왕을 구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나요? 주변 나라들이 왕을 세워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그들은 세상에 속한 나라들이 잘 되는 것 같고, 그들을 부러워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 성도가 세상 사람들의 부귀나 성공을 부러워하면 영적으로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세속화‘라고 부를 수 있지요. 창세기 6장에서는 경건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타락한 여인들을 자기 아내로 삼으면서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어떤 나라입니까?

(4)에서는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5) “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9) ”그들은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이로소이다

하나님이 직접 쓰신 율법을 주셔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지를 알게 해 주신 특별한 민족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백성인 것을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 찾아온 오랫동안의 평안과 형통이 방심을 하게 했고, 신앙도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망각하면, 성도도 가정도 교회도 쉽게 무너집니다.
성도와 교회는 돈이 없고, 성공하지 못해서 망하는 게 아닙니다. 평탄하게 살며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변에도 한 때는 은혜받고 성령도 받고, 뜨겁게 신앙생활하다가 지금은 예배도 안 드리고, 불신자가 된 경우를 보셨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간 왕은 너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적지 않은 세금을 걷어가고, 자녀들을 데려가 일을 시키고, 심지어 종으로 삼아 부려먹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도

(19)에 보세요.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아무리 경고했지만 사무엘의 권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이 사실을 하나님께 아뢰었고, 하나님의 대답이 (22)인데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물론 왕을 세우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17)에 보면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는 왕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백성들을 섬기는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왕의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은 하나님이 진짜 왕임을 알아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bRyKt1U_N4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 나라처럼 왕만을 요구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징계로 주시는 첫째 왕이 사울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울 왕으로 인해 큰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제목은 ’왕을 버리고 왕을 얻으려는 아이러니‘였습니다.

성도는 첫째, 망각할 때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둘째, 말씀에 방심할 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왕을 버리면 육신의 왕, 세속적인 왕을 원하게 됩니다. 그 왕이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난이 도리어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971,72)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참된 왕을 믿고 따르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찬 540장)

 

인생이 힘든 이유는 뭘까요? 아무래도 ‘불확실성’이라 아닐까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불안과 두려움, 근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전능한 능력자가 미래 일을 알려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불안한 사람들은 미래를 알려준다는 사람을 찾아가 사주팔자와 운명에 대해 묻기도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길을 분명히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면 얼마나 안심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 수 없이 망가진 상태입니다.

(사 59장)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하나님은 말씀하시지만 인간은 듣지 못합니다.

영적인 귀머거리가 되고 만 것이죠.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엘리는 제사장인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사무엘은 소년인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지 알아 볼 수 있습니다.

 

(1)에 보면 당시 상황을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당시는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도 드물었고, 이상도 많지 않았습니다.

엘리는 14번째 사사이자,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정치와 종교와 군사의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는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했다(2절)”고 소개했는데, 이것은 노안이 온 것 뿐 아니라, 영적인 눈도 어두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사무엘은 약 열두살쯤 되는 소년이었고, 엘리 제사장 밑에서 수종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년 사무엘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네 번이나 들었지만 엘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예수님께서 동행하셨으나, ‘저희 눈이 가리워 알아보지 못했다(눅24장)’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자 교회였던 라오디게아교회의 성도들 역시, ‘눈이 멀어서 보지 못했다(계3:7)‘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는 영적인 귀가 어두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끊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기도를 들으며 자랐고, 그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19)에 보면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엘리가 소년 사무엘에게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고 지시합니다. 엘리도 예전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경험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라고 한 것이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사무엘은 얼마나 든든하고, 확실하게 담대히 하나님을 믿고 따라갈 수 있었을까요?
성경이 완성되기 전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주로 직접 음성을 통해 말씀하시고, 천사를 보내셔서 말씀하시고, 꿈이나 환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성경이 쓰여졌던 AD 1세기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성령의 임재를 통해 말씀하셨고, 감동과 깨달음을 통해 당신의 뜻을 계시하셨습니다.




문제는 오늘날도 하나님의 음성은 들을 수 있느냐는 것이죠. 물론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감동과 깨달음을 통해 말씀하시고, 때로는 꿈과 환상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성경시대처럼 나타나시거나 말씀하시는 경우가 드뭅니다.

왜 일까요? 꿈과 환상과 음성에는 사탄이 끼어서, 변조하여 나타날 수 있고, 잘못 해석하여 오류를 범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비주의가 나오기도 하고요.

그래서 가장 안전한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바로 성경 66권입니다.

성경은 오류가 없다고 성경 자체의 증언이 있습니다.

 (딤후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 ” 모든 성경이란 완성된 66권을 가르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정경(正經), 영어로는 ’캐논(Canon)‘입니다. 표준 성경이란 뜻이죠.

이 정경인 66권 안에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들어 있습니다. 그게 개인의 문제든, 질병의 문제든, 사회문제든, 인간관계나 신앙적인 해답이 다 성경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심령안에 들아와 성경말씀을 듣거나 읽고 묵상할 때, 조명하여 깨닫게 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감동을 주어 깨우쳐 주십니다. 성경이 모든 사람을 위한 말씀이만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통해 답을 찾기 원할 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 중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분주함을 내려놓고, 정규적으로 경건의 시간(Quiet Time)을 갖는 게 유익합니다.

폴 트루니에는 “묵상은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가 경건의 시간을 꾸준히 가질 때 침묵 가운데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이 곧 하나님의 음성이다.”

또 성도가 기도할 때 응답하십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처럼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이나 확신이 있습니다. 물론 그 깨달음이 성경적이냐를 따져보고 사탄의 음성이냐, 자기 속사람의 음성이냐, 하나님의 음성이냐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란 하나님께 요청하고 부르짖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잠잠히 귀를 기울이는 시간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전에 모나미 볼펜 사장님이 부도 위기에 처할 때가 있었습니다. 울면서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하나님의 책망이셨습니다. “너 사업한답시고 주일 잘 지켰냐? 십일조는 제대로 했냐? 성경은 얼마나 읽었냐?” 정곡을 찌를 음성이었습니다. 한번만 살려 주시면 잘 하겠다고 고백하고 성경을 읽는데 요한복음 21장이 눈에 띄더랍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다시 갈릴리 해변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그물을 던지라고 명한 후 많은 고기가 잡히죠. 그 때 잡힌 물고기 수가 153마리입니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모나미 153 볼펜을 만든 겁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1자루 이상 사도록 50억 개를 생산할 것을 기도했더니, 그런데 정말 50억 개 목표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오늘 날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성경 말씀과 기도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사람들을 통해, 목회자의 권면이나, 성도들과 대화중에 깨닫게도 하시고, 은혜받은 것을 나누거나, 복음을 전할 때 깨닫게도 하십니다. 또한 꿈이나 환상, 질병의 치유 체험, 신비한 영적 경험을 통해 말씀하기도 하십니다.

또는 우리 환경이나 사건, 고난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8LfFZY8sXk

중요한 포인트는, 이렇게 음성을 들었다 싶을 때는 기준인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의 꾐에 넘어가 미혹당하여 낭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주의해야 합니다.

 

요즘 어렵고 힘든 때에 사람들은 근심하며 방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방황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소중한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심령이 가난한 마음으로, 애통하는 심정으로 주님의 음성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무엘처럼 “주여,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이런 자세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안전한 말씀을 묵상하는 큐티를 지속해야 하고, 생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때를 돌파하고, 사탄의 시험과 유혹도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사무엘처럼 말씀 듣기를 사모하십시오. 그 음성 들었을 때 생활에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잘 적용하면 말씀이 우리를 복되고 강건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갈수록 좋아지는 복과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생활로 앞으로 전진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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