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458장)

모든 만남에는 뜻이 있습니다. 특히 성도의 만남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의도가 있습니다.
오늘은 만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내용입니다.

사울이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오랜 시간 헤매고 있는 동안 하나님은 이미 그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하시고 사무엘과의 만남을 계획하셨습니다. 그 만남이 이루어지기 하루 전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이 찾아올 것을 말씀해 주셨고요 그렇게 두 사람은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졌고 깊은 대화와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먼저 (15~16절) 보면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은 우연히 보여지는 사건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사무엘은 사울을 만나기 24시간 전부터 사울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는데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다음 날 사울를 만날 것을 미리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베냐민 출신의 그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사울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를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신 듯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오직 당신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백성은 이미 하나님을 버려 눈에 보이는 왕을 요구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절망에 빠진 그들을 구원할 왕을 자처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왕으로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지혜로운 성도로 사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지혜롭고 복되게 사는 비결입니다.

 이어서 (17~24절)까지 보면
사울은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줄 선견자를 찾았지만 선견자 사무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하나님은 확실하게 그가 하나님이 정한 사람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권세를 가진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왕과 같이 대우합니다.
사무엘은 미리 초청해 놓은 많은 손님들 가운데서도 오직 사울에게 상석을 내주고 요리인을 통해 미리 준비해 놓은 최고의 음식을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그는 사울이 왕이 되면 자신이 지금까지 누렸던 지도자의 권한이 끝나고 그의 아들들도 사사로서의 모든 권세를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그의 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사사로운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전심으로 새롭게 세워질 왕을 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무엘의 모습은 그가 리더십으로 있으면서도 개인적 사리 사욕을 추구하지 않았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처럼 순전한 마음이야말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이 외적으로는 백성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결국 백성들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교회 직분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과 봉사의 자리에서마저 서로의 영향력을 놓고 다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사회이 보여준 순전함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당신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고 살아온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처음 등장하는 사울의 모습을 보면 성실하고 순종적이며 겸손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인데다 키도 훤칠하고 출중한 가문 출신의 자제였습니다. 백성들이 사울을 봤을 때 외모로나 외적인 조건이나 성품으로 봤을 때는 훌륭한 왕의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사울은 그렇게 믿음이 있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그의 부족한 신앙 부분이 드러나게 될 텐데요.

 하나님은 사울을 선택하셨고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던 사무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미래의 왕에게 최선의 예우를 갖추었습니다.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은 하나님의 의도적인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특별히 사무엘은 사사로운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그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회 일처럼 행하기를 원하고 계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만남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익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시고 바라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무 일처럼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세우고 다음 세대를 세우고 주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을 통해서 그 만남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어떻게 풀어가는지를 보았습니다.
사사로운 감정이나 자기의 이익이나 자기의 권리보다 하나님의 뜻을 귀하게 여겼던 사무엘처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로 우리 자신을 통해서 주님께서 가정을 세우게 하시고 사업장과 직장을 세우게 하시고 다음 세대를 세우게 하시며 무엇보다도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충성된 주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찬 516장)

사람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못하면 다른 왕을 찾게 됩니다. 자기가 왕이 되려는 경우도 있고, 물질이나 사람, 성공이나 부유함을 왕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참된 왕을 버리고 거짓 왕을 얻으려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행보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제 사무엘이 나이많아 늙었고, 어느날 이스라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사무엘이 늙었고, 두 아들은 아버지를 따르지 않고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는 불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85)에 보면 진짜 왕을 요구한 이유가 나오는데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모든 나라와 같이.‘ 자신들도 되고 싶다는 것이죠. 그들도 이방나라처럼 인간 왕을 세워, 통치를 받고 싶고, 전쟁에도 이기려면 왕이 직접 지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7)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을 물리친 후, 기념하여 에벤에셀이라는 기념돌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점점 불안해 졌을 것입니다. 안 보이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두가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은혜를 망각할 때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다.
이스라엘 장로와 백성들이 ‘인간 왕을 요구한 것은 국가 위기상황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친히 주변 나라들을 막아주셔서 평안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평화를 누리자,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점점 망각해 갔습니다. 자신들의 힘과 방어력으로 블레셋을 제압하고 있었다로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다 사무엘은 점점 늙어가고, 그 아들들은 패역하니 불안과 염려가 백성들에게 만연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평화를 누렸는데, 그 평화가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었고, 은혜를 망각하게 했던 것입니다.
(적) 사람들은 형통과 평안을 원하는데, 실제로 평안과 형통이 오면 불안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지키려고 인간적인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이죠.

 

많은 성도들이 문제가 해결된 평안한 상태를 원하는데, 놀이터의 시소가 한 쪽 올라가면 상대쪽이 내려가듯이, 평안과 형통이 오면, 그때는 영적으로는 침륜에 빠지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또 실제로 형통하고 평안하면 기도보다는 자기 생각이 더 많아지게 되죠.

 

(잠언 30)에 보면 아굴의 기도가 나옵니다.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7~9)

부하게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 이유는 혹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두렵기 때문인 것입니다. 잘되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은혜를 잊어버린다면 가난한 것이 훨씬 더 큰 복이요,
장수하고 죄를 많이 짓는 것보다, 경건하게 단명하는 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는 복된 것입니다.

 

둘째, 말씀에 방심할 때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이스라엘 장로와 백성이 왕을 구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나요? 주변 나라들이 왕을 세워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그들은 세상에 속한 나라들이 잘 되는 것 같고, 그들을 부러워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 성도가 세상 사람들의 부귀나 성공을 부러워하면 영적으로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세속화‘라고 부를 수 있지요. 창세기 6장에서는 경건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타락한 여인들을 자기 아내로 삼으면서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어떤 나라입니까?

(4)에서는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5) “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9) ”그들은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이로소이다

하나님이 직접 쓰신 율법을 주셔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지를 알게 해 주신 특별한 민족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백성인 것을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 찾아온 오랫동안의 평안과 형통이 방심을 하게 했고, 신앙도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망각하면, 성도도 가정도 교회도 쉽게 무너집니다.
성도와 교회는 돈이 없고, 성공하지 못해서 망하는 게 아닙니다. 평탄하게 살며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변에도 한 때는 은혜받고 성령도 받고, 뜨겁게 신앙생활하다가 지금은 예배도 안 드리고, 불신자가 된 경우를 보셨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간 왕은 너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적지 않은 세금을 걷어가고, 자녀들을 데려가 일을 시키고, 심지어 종으로 삼아 부려먹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도

(19)에 보세요.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아무리 경고했지만 사무엘의 권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이 사실을 하나님께 아뢰었고, 하나님의 대답이 (22)인데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물론 왕을 세우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17)에 보면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는 왕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백성들을 섬기는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왕의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은 하나님이 진짜 왕임을 알아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bRyKt1U_N4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 나라처럼 왕만을 요구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징계로 주시는 첫째 왕이 사울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울 왕으로 인해 큰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제목은 ’왕을 버리고 왕을 얻으려는 아이러니‘였습니다.

성도는 첫째, 망각할 때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둘째, 말씀에 방심할 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왕을 버리면 육신의 왕, 세속적인 왕을 원하게 됩니다. 그 왕이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난이 도리어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971,72)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참된 왕을 믿고 따르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