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268장)

 세상에는 무모한 일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모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도발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이 감히 하나님께 대항할 수는 없는데요. 그런데 사울은 제사장 가족을 죽임으로써 하나님을 도발했습니다. 사울이 이처럼 제사장들을 학살하는 현장에서 도엑과 아비아달은 서로 다른 지도자를 선택했고 각기 다른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누구를 가까이 해야 할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묵상해 봅니다.

 

놉의 제사장들을 죽이는 도엑

 오늘 우리는 먼저 사울을 택한 도엑을 보겠습니다.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사울은 다윗에 대한 작은 호의까지도 자신에 대한 배신 행위로 단정했습니다.
이러한 사울의 의중을 알았던 도엑은 사울이 원하는 대로 아이멜렉에 대한 정보를 왜곡해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도엑게 보고를 듣고 분노가 끌어오른 사울은 놉의 모든 제사장들을 소환해 다윗과 공모한 사실을 실토하라고 다그쳤습니다.
 하지만 제사장 무리 중 누구도 사후를 대적하려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모든 제사장 무리를 죽이라고 명령했고 도엑이 그 명령을 따라 제사장 무리를 학살했습니다.
도엑은 철저히 악한 권력자의 입맛에 자기를 맞춤으로써 이득을 취하려 했습니다. 그는 권력자의 편에 섬으로써 앞날의 부귀 영화가 보장되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이득에만 몰두해 악행을 저지른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뿐입니다.

 잠언은 ‘악인이 서로 손을 잡아도 하나님의 형벌을 면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인이 주는 달콤한 유혹을 경계하고 눈앞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형통함과 성공을 자랑하는 악한 자들은 우리 주변에 언제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거룩함과 선한 행위로 맞서야 합니다.
당장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손해 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반드시 악인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의인들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다윗에게로 도망친 아비아달

 이어서 다윗을 택한 아비아달의 모습을 살펴보겠는데요.
제사장들이 학살당하는 참혹한 현장에서 단 한 사람 아비아달만이 도망쳐 나와서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는 사울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 다윗을 찾아갔는데요. 다윗은 사울이 저지른 악행을 전해 듣고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아비아달을 안심시키며 보호해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아비아달은 다윗의 겸손함과 배려를 보면서 그야말로 하나님이 선택하신 왕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등극하는 데 정당성을 갖도록 끝까지 협력했습니다.
아비아달이 찾아왔을 당시 다윗은 큰 세력을 갖춘 권력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초라한 도망자 신세에 불과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아달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다윗을 선택했고 그 결과 진리 편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는 것이 참된 성공과 승리하는 삶에 비결입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찾는 사람들과 함께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의와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따르라고 교훈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 싸움을 홀로 감당하게 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섬기는 지체와 동역자들을 붙여주십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그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할 때 서로 사랑과 선행의 격려를 받으며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잠 2장 20~22절)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아기는 땅에서 끊어지게 했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참된 지혜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더 복된 선택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우리 믿음의 공동체 안에 머물면서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득이 되는 사람에게는 호감을 느끼며 함께하고자 합니다. 악한 권력자에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이유도 그를 가까이 하면 자신이 원하는 부와 명예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형통은 곧 끝나고 말 것입니다.
 이를 아는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지체들과 함께 하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군중의 길이 아니라 바로 좁은 길 생명의 길을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경애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믿음의 거룩한 길을 끝까지 가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vjJ4UsUc40

 기도드립니다.
 성령님, 저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성령님, 저희를 이끄셔서 다윗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사람을 가까이 하게 하시고 그들을 잘 따라서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붙잡아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세우신 이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 끝까지 함께 머물면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땅의 약속과 진정한 성공과 승리의 삶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성령님, 우리 모두 주님의 진정한 공동체로 남아 있게 하시고 우리의 오늘 삶에도 어떠한 상황에 서든지 그것이 우리 마음에 들던지 들지 않든지 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을 가게 하옵시고 믿음의 동역자들과 거룩한 길 끝까지 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이 땅에서 보존시켜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찬 450장)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우연이라고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필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심지어 우리가 겪는 고한은 헛되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풀무를 통해서 당신의 백성을 연단하시고 빚어가시기 때문입니다. 다윗 역시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점점 세워져 갔습니다. 그는 또한 고난 당하는 사람들이 의지할 만한 믿음의 용사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다윗과 사울왕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떠난 사람의 분명한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삼상 21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윗은 사울을 두려워해서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갔습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무리가 춤추며 다윗에 대해 노래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에 다윗은 두려움으로 그들 앞에서 미친 척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수염의 침을 흘렸습니다. 아기스는 자기에게 미치광이를 데려왔다 하며 신하들을 책망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가드를 떠나서 아둘람 굴에 숨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그 집안 사람들이 다윗을 찾아왔는데 그 외에 가난하고 소외되고 원통한 사람들도 몰려들었습니다. 다윗은 어느새 그들의 수장이 되어 그들을 책임지고 돌보게 되었습니다.
즉 다윗은 환란 당한 자와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을 품어주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다윗을 통해 새로운 소망을 품었습니다. 다윗 역시 자신을 의지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통해 위로를 얻었을 것입니다.
 위로와 회복이 넘치는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입니다.


 이어서 다윗은 자신의 부모를 모압 왕에게 부탁했습니다. 아마도 모압 출신 증조모 룻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이 요새에 있을 때 부모는 모압에서 지내게 됩니다.
다윗은 도망자 신세임에도 최선을 다해 부모를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부모를 소홀히 대하는 태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형편이 어렵다고 부모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는 것도 바른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선지자 갓이 다윗을 찾아와서 요새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조언했습니다.
다윗은 말씀에 순종해서 헤렛 수풀로 거처를 옮겼는데요. 다윗에게 도피 생활은 연단의 과정이었고 목적은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면서 과감하게 유다 땅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성도는 방향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결단의 순간에는 과감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다윗은 거룩한 목적을 향해서 조금씩 그렇게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Saul angry with David,Antoni Brodowski,1815

 반면에 사울의 모습을 보면 몹시 불안해합니다. 다윗이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과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에셀나무 아래에서 손에 꼭 쥐고 있는 단창이 그의 마음을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불안한 사울은 다윗이 반대 세력으로 유다 땅에 등장했는데 아무도 자신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며 신하들을 질책하고 압박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요.
끊이지 않는 불안과 지속적인 갈등은 자신에게 영적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이때 도엑이 사울에게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을 돕는 것을 보았다고 고발했습니다.
자신이 사울왕의 눈에 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긴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악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도액과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견고한 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윗처럼 힘을 키워야 합니다. 돕는 사람들을 붙여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기도의 동역자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과 함께 악한 세력을 공동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지 당신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성도된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어려운 상황일수록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 뿌리를 땅에 깊숙이 박은 나무는 거센 바람이 불어도 뽑히지 않듯이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뿌리를 깊이 박고 서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느끼기에 하나님의 날개 아래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께 메어 달리기 보다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렵게 느껴지는 상황이라고 해서 성도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더 헤어나기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사 시대에 베들레헴 사람 엘리멜렉을 보십시오 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극심한 기근에 처하게 되자 온 가족을 이끌고 이방 땅인 모압으로 이주해서 갔잖아요? 즉 그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이 싫어서 하나님의 품을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그와 두 아들이 모두 죽고 오직 그의 아내인 나오미만이 겨우 살아서 모압에서 얻은 자부 룻만을 데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잖아요? 또 돌아와서도 나오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의 삶은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삶이 아무리 어렵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날개 아래 거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게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 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 있으면 결국은 하나님의 보호로 인해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당장은 힘들 수 있어도 궁극적인 기쁨으로 초대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반석 되시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방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은 암닭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우리를 품으심으로써 평안과 기쁨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시편 37편 39, 40절) 이렇게 말씀합니다.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란 때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데살로니가전서 33)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도 이 여러 환란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hvjJ4UsUc40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다윗은 모든 일에 유연하게 대처했습니다.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는 선지자의 제안도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유연한 마음이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넘칩니다.

반면에 사울은 불안함으로 점점 더 고립되었고 그의 주변에는 도엑 같은 악한 사람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다윗과 같은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으로 오늘 하루도 승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오늘 하나님이 함께하는 다윗과 그렇지 못한 사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유연했지만 사울은 불안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다윗의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담대한 성도로 살게 하시며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는 지혜로운 성도로 오늘 하루도 잘 보내게 하여 주옵소서. 함께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또 필요한 지혜와 능력을 공급해 주시고 오늘 이 하루도 넉넉히 승리하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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