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218장)
살다 보면 억울한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억울함을 이유로 모든 상황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억울한 상황에서도 참된 승리자가 되기 위한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승리의 길을 배우고자 합니다.
사울은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군사 3천 명을 데리고 다윗을 잡기 위해서 들염소 바위까지 갔습니다. 다윗은 고작 600명의 군사로 사울의 군대를 맞서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찾아오는 위기는 마치 이런 상황으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요나단이 고백한 것처럼 여호와의 구원은 어떠한 조건으로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삼상 14장 6절) 요나단이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처럼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만 신뢰해야 합니다.
다윗에게 역전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사울이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홀로 굴에 들어갔는데 마침 그곳에 다윗과 그의 일행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만 잘랐습니다.
다윗은 지금 얼마든지 사울을 죽이고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기회를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는 기회로 삼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최우선적으로 행동해야 하지요. 평소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 극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거룩한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오는 기회를 이기심을 채우는 기회로 삼지 않게 합시다.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뵌 것을 심하게 자책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군사들에게 사울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임을 말하며 그를 해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여전히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으로 여긴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을 경애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직접 선택하신 종을 해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성숙한 믿음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으며 원수 갚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립시다.
다윗은 굴에서 나아가 사울을 “내 주 왕이여”라고 부릅니다. 엎드려 절하며 억울함까지 호소합니다.
특별히 사울을 “내 아버지여”라고 부르면서 사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이렇듯 다윗은 자신을 원수로 여기는 사울을 여전히 왕으로 인정하고 존중했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상대를 꺾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손을 내밀어 그를 용서하고 품어줄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죽은 개와 한 마리 벼룩같이 미천한 존재이니 자신을 죽이려 추격하는 것은 무익한 일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여호와께서 자신의 억울함을 판결하실 것을 호소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모습은 그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처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실로 자신의 모습을 낮출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겸손함이 하나님 마음에 합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들어 쓰십니까?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까?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의 자금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사람 앞에 겸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크심을 고백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존중해 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대희 저자의 ‘다윗처럼 기도하라.’ 책의 일부를 읽겠습니다.
나는 오래전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광야에서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다. 유대 광야 아래쪽의 엔게디 황무지였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마른 땅 밖에 없는 곳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기도하며 지세웠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하룻밤을 지냈을 장소에서 텐트를 치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밤을 보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도적이 나타나면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인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때 나는 여기서 나를 보호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구나 그냥 죽으면 죽을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정말 위험하기 그지 없었다. 예측 불허의 상황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 바로 광야이다. 이스라엘의 날씨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만약 한순간에 광야의 폭풍이라도 불어온다면 또한 광야의 야수나 뱀들이 잠자는 텐트를 둘러싼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광야는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널려 있는 곳이다.
광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었다. 다윗이 숨은 곳이 바로 그런 광야였다. 다윗은 그 속에서 무엇을 경험했을까 나는 스스로 원해서 들어간 하룻밤의 광야였지만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곳이었다. 하룻밤을 지내는 상황이 나와는 전혀 달랐다.
광야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눈을 뜨고 영적으로 맑아지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신비가 감추어져 있는 곳이 광야다 불안함과 고결함이 함께 숨 쉬는 곳이다. 나 자신을 온전히 하늘에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곳으로 광야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광야를 허락하셔서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이 모든 상황을 합력하여 선이 되고 승리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반전시킬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늘 다윗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어떤 기회가 왔을 때 자기의 이기심을 채우거나 누구에게 원수 갚아 줄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안 됩니다. 언제나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해야 되고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바라보고 또한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여기 이것은 바로 다윗의 겸손해서 나온 행위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 있다면 사람을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어떤 원수나 대적이라도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우리 모두 다윗처럼 행동합시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허락된 일이라고 인정하고 오히려 그것을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합시다 자기가 부당하고 억울할 때 그것을 공의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일을 처리할 때 겸손하게 상대편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마음으로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롭게 보시고 갚아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구하며 기도하며 지혜롭게 맞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biAsdLpSyY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는 오늘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사울왕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며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님, 우리에게도 이런 넉넉한 마음이 있게 하시고 넓은 그릇의 마음이 있게 하소서 또한 겸손히 있게 하시고 인정하고 존중해 줄 줄 아는 인격이 있는 성도가 되게 하시며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때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기도하며 주님 앞에 의로움으로 추구하며 해결할 때 하나님 이것이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뜻에 누가 되지 않는 복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와 성령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사로잡아 주옵소서. 오늘 또 영원한 지혜자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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