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 523장)
사람은 곤혹스러운 일을 만나거나 책임 추궁을 당할 때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하여 본능적으로 변명을 사용하고 싶어하는데요, 그러나 이런 변명은 잠시의 소나기를 피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 할 수는 없습니다.

변명보다는 차라리 인정과 수용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울의 변명과 하나님의 평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시대 때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그 때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속적인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타락했기 때문인데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십니다. 이것은 뭐를 암시하죠? 홍수 심판이 있었던 것처럼 사울 인생에도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무엘은 이 일 때문에 근심하며 온 밤을 부르짖였는데, 정작 사울 본인은 의기양양하게 자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웠고, 사무엘을 만나자 자신이 여호와의 명령을 완수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그럼 내 귀에 들리는 양과 소의 소리는 무슨 소리냐? 왜 이것을 살려왔느냐”고 추궁합니다. 그러자 사울은 변명하기를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 전리품으로 가져온 것인데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좋은 소와 양을 골라 온 것이라”고 둘러댔습니다. 즉 그건 백성이 한 일이지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거죠.

이 사울의 말은 누가봐도 말이 안 되는 변명이었어요. 왜냐하면 정말 사울이 제사를 드리려고 했다면 길갈이 아니라 언약궤가 있는 20킬로는 더 가까운 기럇여아림으로 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멜에서 길갈까지는 족히 100킬로 미터는 되는 거리였습니다. 그런 먼 거리를 가축 떼를 이끌고 이동했다는 것은 그것들을 자기 소유로 삼지않으려 했다는 것 자체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뻔한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할 때 처럼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엄숙히 전합니다. 그 내용은
“여호와께서 작은 당신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시고, 왕의 길로 보내셔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끌고 왔나이다.”
그러면서 사무엘은 사울왕에게 아주 중요한 말을 하는데요, 이 말은 사무엘상 전체에서 핵심이 되는 구절이자, 하나님께서 사울을 보고 평가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21~22) 함께 읽겠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하나님은 사울왕에게 두번이나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반복해서 죄를 부인하고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왕위를 빼앗아 다시 왕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신앙인의 핵심을 짚어주었는데요. 그것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였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수많은 제물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없고,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제사는 순종의 제사라는 것입니다.

 

자 이게 오늘 말씀의 내용인데요.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을까요? 이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길 원하실까요?
첫번째, 변명은 사람에게 통용될 수 있으나 하나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자기가 전쟁을 이끄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수하들의 군사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는 것처럼 변명했습니다. 그 변명은 알고 보면 자기 합리화죠. 그는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했고 심지어 하나님의 사람도 속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사울이 “하나님께 제가 잘못했습니다. 좋은 가축들을 다 죽이는 것은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라도 솔직히 내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빕니다“라고 했다면 그는 분명이 용서받았을 것이요, 그의 가문도 멸족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813)에 보세요.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말씀들은 하나님의 속죄의 약속입니다.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길 원하실까요?

두번째 (17)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사울이 스스로 작게 여길 때,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는 영광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말을 통해 우리에게 스스로 낮아지면 높아질 만큼 공간이 커짐을 가르쳐 주신다고 믿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Z8CHPQWXGo

사울이 겸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든 상황은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블레셋 전투에서 패하여 전사하는 것으로 허무하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란 말입니다.


반면 다윗을 보세요. 그가 끝까지 하나님께 겸손했을 때 하나님께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의 언약(David’s Covenant)’를 통해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결정적인 차이가 뭘까요? 결국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사울은 변명했고, 다윗은 솔직히 시인하고 침상을 띄우는 회개를 했다는 점입니다.
그 둘은 이스라엘의 왕인데, 모두 다 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뜻에 의도적으로 불순종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자기 칼에 엎드려 죽고, 또 하나는 이스라엘에 가장 훌륭한 왕이 되었습니다.

결과의 차이는 결국 겸손의 차이였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뭔가요?
당신은 사울왕이 되려고 하십니? 자신도 모르게, 아니면 다윗왕처럼 살고 복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다 되는 게 아니라 절대로 선택하면 안 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울왕의 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변명보다 수용을, 교만보다 겸손의 길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Greatest in the Kingdom

 

(455)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외형적 교회가 있고, 내형적 교회가 있지요. 외형적 교회는 건물이나 장소지만 내형적 교회는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교회는 건물일 수 있지만 진짜 교회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교회도 마찬가지로 각자 생각이 다르고, 말이 많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된 교회는 사랑과 권면으로 서로를 돌아보며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쫓아갑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교회는 하나되지 못하고 사분오열되어 있으며, 지역의 교회들도 서로 연합하지 못하고 경쟁하기 바쁩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한 마음을 품을 수 없는 우리들에게 한 마음을 품고 교회를 하나되게 하라고 해법을 제시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한 마음을 품고 하나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첫째, 겸손함으로 한 마음을 품으라(1~4).

예수믿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안에서 진짜 교제가 이뤄지고, 서로 끈끈하게 삽겹줄로 하나되려면 권면, 사랑, 긍휼 이 세가지가 꼭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교회가 한 마음만 되면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며, 또 엄청난 사명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한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각자의 개성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각자의 은사와 성품,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위해 협력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바로 다툼과 허영입니다. 사탄이 성도를 다툼과 허영을 품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도록 속이는 것입니다. 다툼과 허영은 이기심에서 비롯되고, 그 이기심의 뿌리에는 교만이 있습니다.

공동체가 하나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직 겸손입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 자기 일을 열심히 할 뿐 아니라 다른 지체의 일까지도 돌아보는 넉넉한 마음이 교회를 진짜 건강하게 만듭니다(4).



 둘째,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5~8).

신앙생활에서 가장 쉽고 가장 어려운 것이 뭘까요? 그것은 바로 교만과 겸손입니다. 교만하기는 너무너무 쉽습니다. 본성이니까요. 그러나 겸손은 정말 어렵고 힘듭니다. 저는 신앙생활하면서 항상 주의하고 조심하려는 것이 겸손입니다. 매일 연습해도 겸손함을 유지하기가 여간 쉽지 않습니다. 마치 외줄타고 균형을 잡는 것만큼 힘들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왜 겸손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헤를 주시고, 복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의 본성인 교만으로는 교회가 절대로 한마음 한 뜻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도들 모두가 함께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목회자만도 아니고, 성도만도 아니라 모두가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죠.

교만하기는 목회가 늘 가르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교만하기 십상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안의 직분자들이나, 오래 출석한 성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누구나 예외없이 다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이 말씀안에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다가, 이 타락한 땅에 태어나신 것만해도 기가막힌 일인데, 심지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라고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높은 하늘 보좌에서 가장 천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거친 강보에 쌓였고, 말밥통에 뉘실 정도로 낮아지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낮아지심에 대해 한마디도 하나님께 불평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바로 이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고 따라야 합니다. 그게 진짜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누가 봐주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예수님의 겸손을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예수님의 겸손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통해 드러나게 훈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교만하면 모든 신앙생활의 헛것이요, 모든 기도가 시간낭비요, 모든 헌신과 예배가 엉망진창에 빠질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 하나님께 나아왔으나, 가장 비참하게 하나님을 섬긴 자로 남을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은 겸손의 교과서가 되어 주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가장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지만, 하늘과 땅의 모든 입술이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낮아지심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간 영원한 샘플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38qR13UzM8

 사랑하는 성장 큐티 가족 여러분, 다시 강조합니다. 겸손하기를 힘쓰십시오. 겸손을 유지하는 것이 곧 경건생활이고, 겸손이 곧 성품으로 나타날 때 예수님이 전해지며, 겸손하게 섬길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훈련보다 항상 겸손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 서로가 이렇게 예수님처럼 겸손하기를 힘쓰고 집중할 때, 교회가 하나되고 반석위의 교회처럼 강건해 집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겸손할 때, 가족 식구들이 은혜를 받고,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존중해 줄 것입니다.

오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신 예수님의 본을 받아, 우리 삶의 자리에서 겸손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성령님께서 겸손하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드립시다. 오늘도 겸손하여 가장 귀하게 쓰임받는 멋진 제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 예수님, 오늘 가장 쉬운 것은 교만이고, 교만은 사탄에게 속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성령님, 겸손하게 하소서.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강한 것을 나타내는 겸손한 종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교회가 하나되고 복음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오늘 우리 자신을 통해 주님이 드러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영광과 존귀를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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